[스토리人] 공무원 던지고 노동인권 활동가로... "노동자 변화에 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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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人] 공무원 던지고 노동인권 활동가로... "노동자 변화에 보람"
  • 박주연 기자
  • 승인 2023.12.22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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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자 서울노동광장 대표·서울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전 위원장

<편집자註> 시민사회는 '시대의 창(窓)'일뿐 아니라 가장 강력한 '여론 형성의 장(場)'입니다. 세상의 흐름을 알지 못하고, 세상 사람들의 생각을 읽지 못하고선 미래를 꿈꿀 수 없습니다. 수많은 사람(人)과 쉴새없이 소통하는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각양각색 사연을 [스토리人] 코너를 통해 소개해 드립니다.

인공지능(AI) 시대에 노동이란 단어는 어딘지 어색해 보인다. 마침 얼마 전 한국은행은 우리나라 전체 일자리 중 12%를 AI가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규제 없는 AI는 임금 불평등을 완화할 수도 더 악화시킬 수도 있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다. 인간을 ‘호모 라보란스(Homo laborans, 노동하는 인간)’로 본다면 노동의 역사인 인간의 역사는 앞으로 다시 써야할 지도 모른다.

노동의 가치를 따지는 것이 낡은 레코드판을 돌리는 것처럼 여겨지는 노동 위기의 시대, 교육을 통해 노동의 참 의미를 되새기며 사는 이들이 있다. 공군자 서울노동광장 대표가 그런 이들 중 한 사람이다. NGO저널이 공 대표와 만나 노동과 함께 하는 그의 삶 이야기를 들었다. 공 대표는 교육조직 활동가로 서울노동광장과 카페봄봄에서 노동인권교육을 하며 노동자들의 삶을 배우고 있다. 청소년노동인권에 관심을 갖고 서울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와 함께하며 청소년노동인권교육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공군자 대표는 서울노동광장과 카페봄봄에서 노동인권교육을 하며 노동자들의 삶을 배우고 있다. 그는 노동자들을 돕다 안정된 직장에서 해고됐지만 후회하지 않는다며 밝게 웃었다.
공군자 대표는 서울노동광장과 카페봄봄에서 노동인권교육을 하며 노동자들의 삶을 배우고 있다. 그는 노동자들을 돕다 안정된 직장에서 해고됐지만 후회하지 않는다며 밝게 웃었다.

 

- 반갑습니다. 서울노동광장 단체 소개 먼저 부탁드립니다. 만들어진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반가워요. 그러니까, 내년이면 20주년이 되네요. 취지는 노동자들을 교육하고 같이 토론 모임도 하는 그런 활동을 해보자는 거였어요. 2002년 이때부터 준비가 시작됐죠. 그때는 노동조합이 활성화된 지가 오래되지 않은 시기라 노동과 관련한 교육이 필요했어요.”

- 어떤 내용을 교육하나요?

“철학, 경제, 역사, 리더십 교육 등 다양합니다. 아무튼, 노동자 교육을 취지로 뜻 있는 사람들의 준비작업을 거쳐 2004년도 11월 발족해 지금까지 왔죠. 노동자 역사학교도 하고 업종별로 노동자들이 와서 교육받고 책 읽고 토론도 했었어요. 그러다 지역 주민 노동자들을 만나 소통하는 게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11년 전쯤 공간을 바꾸어서 카페봄봄을 만들고 새롭게 다양한 시도들을 해보고 있어요.”

- 비영리단체인 서울노동광장을 운영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 같습니다. 회원들 회비로 운영되는 건가요?

“네. 회원들 회비로 운영하죠. 또 카페봄봄이 일반음식점으로 등록돼 있어서 단체 행사나 음식을 팔기도 하지만 주 운영비는 회원들의 CMS 회비에요.”

- 서울노동광장이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합류하셨던 겁니까?

“단체를 만들려고 준비할 때는 제가 공무원 신분이었기에 합류하지 못했어요. 2005년도에 해고되면서 본격적으로 합류한 뒤 지금까지 해오고 있네요.”

- 공무원이셨군요. 해고 사유는 뭔가요?

“정치활동 금지조항 위반이었죠. 옛날 민주노동당에 가입한 건 때문에...우리나라 최초 사례로 알고 있어요.”

- 후회는 없으신가요?

“후회는 없어요. 오히려 다른 한편으로는 홀가분한 느낌이랄까요? 그런 기분도 들더군요. ‘역사가 사람을 선택한다’는 말이 이럴 때 하는 말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죠.”

- 가족들 반응은 어떻던가요.

“가족 중 남편과 시동생네 부부만 알아요. 다른 가족들은 아직도 잘 모르죠. 아, 둘째 오빠가 1년 정도 지난 뒤 이 사실을 알게 됐네요. “야, 너는 말도 안 하고 이렇게 큰일을 저지르니” 하더군요. 제가 “알았다면 오빠가 바꿀 수 있는 게 있어? 없잖아. 괜히 속만 상하잖아. 그냥 식구들한테도 말하지 말고 조용히 해” 그랬어요. 알았다고 하더라고요. 제 사례가 첫 사례이자 꽤 큰 사건이어서 언론사에서 일하고 있는 시동생네는 알 수밖에 없었던 구조였는데, 다른 가족에게 말하지 말라고 제가 입단속 시켰죠. 남편은 늘 저를 지지해주는 사람이고. 어쨌든 그래서 아직도 우리 시부모님과 다른 가족들은 제가 계속 공무원 생활하는 줄 알아요. 하하.”

공 대표의 활동을 가장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이는 역시 남편. 해고된 후 남편에게 "이제부터 생계 책임은 당신"이라며 본격 운동가로 뛰어들었다고. 부부는 사랑과 결혼에 관해 평소 치열한 토론을 해왔다고 한다. 서로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밀어주고 끌어준다고. 이렇게 쌓인 동지의식이 행복한 결혼생활 비법 중 하나인 듯 하다.
공 대표의 활동을 가장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이는 역시 남편. 해고된 후 남편에게 "이제부터 생계 책임은 당신"이라며 본격 운동가로 뛰어들었다고. 부부는 사랑과 결혼에 관해 평소 치열한 토론을 해왔다고 한다. 서로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밀어주고 끌어준다고. 이렇게 쌓인 동지의식이 행복한 결혼생활 비법 중 하나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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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무원 신분으로 정당 가입을 할 정도로 노동 문제에 관심이 많으셨던 건데, 언제부터 시작된 건가요?

“어릴 때부터 늘 궁금했던 게 있었어요. 집이 시골인데, 엄마 아빠는 새벽부터 밤까지 정말 열심히 일하셨거든요.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저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왜 우리 집은 늘 가난할까’ 하는 궁금증이 늘 머릿속을 떠나지 않더라고요. 그러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보고 듣고 공부하면서 사회 구조적인 문제가 크다는 걸 느끼게 됐고 노동자들과 농민들 삶에 대한 것들도 관심 갖고 보기 시작한 거예요.

고용노동부 공무원으로 일하게 되면서는 내가 뭔가 도움이 될 줄 알았는데 그냥 법대로 행정처리만 하는 거라 별 도움이 안 되더라고요. 할 수 있는 거라면 (법령 해석을) 적극적으로 해석해 처리한다는 것 정도? 하지만 법을 뛰어넘어 행정을 하는 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명확한 한계를 느꼈죠.”

- 공무원 생활은 얼마나 하신 겁니까?

“11년 했어요.”

- 아무리 소신이 있더라도 생계문제를 떠나 결단하는 건 힘든 일이잖아요. 노동운동을 해보겠다고 모든 걸 던지고 뛰어들긴 쉽지 않아 보이는데요.

“같이 사는 사람의 지지가 없으면 힘들어요. 어쨌든 그때 해고된 후 남편한테 “결혼 후 내가 많이 감당했으니 이제부터는 당신이 책임져요”라고 했죠. 결혼하고 남편과 서로 많이 얘기했던 게 ‘결혼이 뭐냐’, ‘사랑이 뭐냐’ 이런 주제였거든요. 참 어려운 문제죠. 하하. 그래서 결론을 낸 게,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배신이나 반역 이런 게 아닌 이상 서로가 하고자 하는 걸 적극 지원하고 지지해주자는 거였어요. 그런 게 진짜 사랑이고 결혼 아니냐고 서로 공감한 거죠.”

- 자녀들은 엄마 하는 일을 도와주나요.

“딸과 아들이 있는데, 우리 아이들은 엄마가 무슨 일을 하는지 굉장히 헷갈려 해요. 그냥 공무원으로 알고 있다가 또 학교에서 노동인권 교육을 한다는 건 알고...우리 엄마 아빠는 직업이 헷갈리고, 뭘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고 해요. 하는 일들이 갈래도 많고 다양해서. 아이들은 이제 그러려니 해요. 하하.”

- 노동인권 활동가로서 계속 활동하는 한편, 현재는 논문을 쓰고 있다는 말씀 들었습니다. 어떤 겁니까?

“방송대 사회복지학과 대학원에 재학 중이에요. 이 대학 커리큘럼이나 지향하는 바가 좋아서 입학해 공부 중입니다. 제가 청소년 노동인권 교육 운동을 해오면서 내가 제대로 교육하고 있는 건가 하는 고민이 많았어요. 그러다 프레이리(※ Paulo Freire : 교육의 본질적 목적을 인간성의 회복, 인간해방으로 보고 실천한 브라질 교육사상가) 공부를 하면서 이 프레이리 교육론으로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청소년 인권교육을 다시 한번 분석해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관련 논문을 쓰고 있죠. 최종 논문 심사가 통과돼서 마무리하는 과정에 있어요.”

- 그동안 노동인권 운동과 교육 활동을 해오면서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점에 대한 고민도 많을 것 같습니다.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너무 많고 산재해 있죠. 저는 학생들 교육할 때 외국의 사례를 이야기해줍니다. 유럽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사회구조라는 얘길 해주죠. 예전 언론에 어떤 벽돌공 이야기가 한 번 소개된 적이 있어요. 이 벽돌공은 자기가 벽돌을 잘 쌓기 때문에 사람들이 안전하게 집에서 살 수 있다는 자긍심이 있다, 자기가 하는 일이나 은행장이 하는 일이나 모두 사회에 똑같이 중요하다고 여기는데 이건 결국 사회 인식의 문제이고 또 구조의 문제이기도 해요.

또 하나는 임금 격차가 그렇게 크지 않다는 거죠. 반면 우리는 직업에 대한 인식이나 임금 문제에서도 격차가 굉장히 크고요. 이 간극이 줄어들 때 사람들이 일을 하더라도 불편함이 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미치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도 정말 보편복지가 하루라도 빨리 현실화돼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보편복지가 결국은 노동인권과도 직결된 문제라는 생각이 나이를 먹을수록, 공부할수록 드네요.”

 

공 대표는 최근 발족한 전국요양보호사협회에 보탬이 된 것을 활동 중 가장 보람을 느꼈던 순간으로 꼽았다. 반면 노동인권을 교육하는 활동가로서 노동조건이 악화되거나 노동자들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 가슴이 아프다고.
공 대표는 최근 발족한 전국요양보호사협회에 보탬이 된 것을 활동 중 가장 보람을 느꼈던 순간으로 꼽았다. 반면 노동인권을 교육하는 활동가로서 노동조건이 악화되거나 노동자들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 가슴이 아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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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 활동하시면서 이런저런 사연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보람된 일도 있고, 반대로 좌절했던 적도 있을 것 같고요.

“꽤 많았죠. 보람이 없으면 여태 이러고 못 살죠. 하하. 특히 저를 변화시켰던 계기는 돌봄하시는 요양보호사 선생님들과의 만남이었던 것 같습니다. 10년도 더 된 이야기인데, 요양보호사 노동 조건에 고민이 많았던 한 분을 알게 됐어요. 그분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분들을 만날 수 있는 계기가 어떤 것이 있을까 생각하다 스트레칭 교실을 하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이분들이 직업상 근골격계 질환이 많았기 때문이죠. 스트레칭하기 전 제가 30분씩 교육을 먼저 하고 운동하고 밥도 먹고 또 함께 놀러가기도 하고요. 그때 이분들의 변화되는 모습을 많이 봤어요.

이분들은 늘 여성으로서, 나이 먹은 사람으로서 자기 목소리를 내본 적이 거의 없고 심지어 어떤 분은 가족 말고 1박2일 정도의 여행을 단 한 번도 다녀본 적이 없는 분이었어요. 이런 분들이 프로그램 끝내고 워크샵을 함께 떠나 많은 사람 앞에서 자기 이야기를 하는 거죠. 그분들에게는 하나하나가 다 삶의 도전이기도 했고 그 속에서 자기 삶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아, 사람은 나이를 먹어도 변화될 수 있구나’ 하는 걸 많이 느꼈어요. 보람이 컸죠. 얼마 전에 전국요양보호사협회가 발족했는데, 여기까지 온 과정에서 저도 조금은 보탬이 됐다는 생각이 들어 감동 받았죠.”

- 늘 결과가 좋고 매번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건 아니잖습니까.

“늘 좋을 수만은 없죠. 노동조건이 악화될 때 많이 힘들어요. 또 노동자들 돌아가실 때 심리적으로 힘듭니다. 몇 년 전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이분이 산재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노동자들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참 열심히들 산다고 했는데 왜 갈수록 더 어려워질까 하는 생각이 들 때 많이 힘들어요. 좌절감도 들고 기운이 많이 빠지고.”

- 노동교육할 때 건강 관리 문제도 이야기해주십니까.

“건강권 관련해서 이야기하죠. 근데 현장에서의 건강권은 본인들이 관리하는 것도 있지만 국가나 사회에서 관리해야 하는 부분들이 더 중요합니다.”

- 노동자 건강, 안전 문제에서 국가 차원에서 특히 이런 지원이 필요하다는 게 있으신가요?

“일하다 보면 누구나 실수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래도 죽어서는 안 되죠. 우리나라 산재 사망사고가 세계에서 늘 상위권이에요.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주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기업들 책임도 크지만, 국가에서도 법규제 책임 소재를 명확하게 해줘야죠. 중대재해처벌법이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어요. 생각해 보세요.

대구 지하철 사고도 그렇지만, 저는 서울 지하철 탈 때마다 무서워 죽겠거든요. 아침 출퇴근 시간에 ‘이러다 누구 하나 엎어지면 대형사고’라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타고 내리는 사람들 통행 안내하는 사람을 볼 때도 불안하죠. 저러다 사람들에 밀려 떨어지는 것 아닌가...만약 사고가 난다면 ‘누가 밀어서, 누가 엎어져서’ 이런 말 할 수 없어요. 그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줘야 하는 거지.

예전 러시아에 한 번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거기는 교통체증이 너무 심해 국가나 시에서 아예 출퇴근 시간 로테이션을 실시한다고 해요. 그러니까 어떤 업체는 출근을 8시에 하고 어떤 업체는 9시, 어디는 10시 이런 식으로 해서 사람이 집중되는 시간을 분산시키는 거죠.”

- 거기는 공산주의 국가라 그런 시스템이 가능한 것 아닙니까.

“그렇지 않아요. 우리나라는 아이들 수능시험 본다고 비행기도 통제하잖아요. 마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한 거예요. 왜 수능 보는 날은 통제 가능하고 일상적으로 늘 위험에 노출돼 있는 지하철 출퇴근 문제는 그렇게 못한다는 겁니까. 말이 안 되죠. 지금 지하철 운행도 기관사 혼자 운행하는 것도 문제가 심각하죠. 원래 2인승이었던 걸 줄인 거잖아요.

1인승이면 사고가 났을 경우 혼자 안전을 담보해야 하는데 그게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사고가 났을 때 빨리 보고해야 뒤따르는 운행차가 박는 사고를 막을 수 있기 때문에 보고하고 조치하는데 그 일을 하는 사이 시민들은 안전에서 또 밀려나 있는 거예요. 이런 제도적 시스템들을 국가가 보완하고 마련하는 등 해결해줘야 해요.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어야 시민들도 안전한 거죠.”

공 대표는 AI가 바꾸어 놓을 노동의 미래에 대해 우려한다. 인간의 존엄성 차원에서 기술발전도 고려돼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개인적으로 그는 활동가로서 미래에 대한 고민도 시작했다고. 역할이 무엇이 됐든 시니어로서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고 했다.
공 대표는 AI가 바꾸어 놓을 노동의 미래에 대해 우려한다. 인간의 존엄성 차원에서 기술발전도 고려돼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개인적으로 그는 활동가로서 미래에 대한 고민도 시작했다고. 역할이 무엇이 됐든 시니어로서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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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업화 과정에서 노동인권이 열악한 기업과 현장도 많았지만 지금은 많이 개선된 것 아닙니까. 일각에선 기업도 과거와 달리 최선을 다하고 있고, 오히려 제도적으로 불리한 것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주장하고요. 노동자들의 요구를 다 들어주면 현실적으로 세계 경쟁력을 따라잡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런 이야기들은 대기업 사람들이 많이 합니다. 저는 이렇게 얘기하죠. 편의점 점주나 체인점 점주들이 그런 이야기 하면 충분히 이해한다, 왜냐하면 이 사람들은 구조적으로 자기들이 가져갈 이익이 별로 없기 때문이에요. 중앙에서 제어하고 가져가는 게 너무 많아요. 그래서 최저임금 올라가면 점주들에겐 부담이 되죠. 1970년대에 회사 망한다, 일단 나라가 살고 회사가 살아야 하지 않느냐는 논리를 지금까지 계속 쓰고 있어요. 언제까지 노동자 임금 깎아서 해결하려고 하나요.

소규모 영세 사업장이 재정적으로 어렵다면 중앙과 연결된 곳은 수익 분배 구조를 잘 살펴서 점주나 노동자나 적정하게 임금받고 같이 살아야 궁극적으로 나라도 사는 게 아니겠어요. 나라를 무너뜨리자는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잖아요. 국가의 중산층이 넓게 형성되려면 적정 임금 수준이 형성돼야 하고 조그만 가게들도 살아야죠. 재벌만 잘 산다고 나라가 잘 운영되는 거 아니니까요.”

- 인공지능(AI)의 시대에 노동의 의미가 다르게 와 닿습니다.

“지금 속도로 가면 기술발전이 인간을 잡아먹는 시대가 올 것만 같습니다. 너무 예민한 걸까요? 기술개발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기 위한 방안으로 활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노동의 어려운 점을 보완하기 위한 정도로 발전시키는 것이 맞지 않나 생각합니다.”

-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삶과 생활환경 보장을 위해서 활동하시는데 정작 공 대표님의 생활은 안정적이라고 할 수 없군요.

“비영리 민간단체는 어느 영역이나 다 그럴 거예요. 저만 그런가요. 활동하는 분들 대부분 활동비 마련하는 게 어렵죠.”

- 노동시민사회의 가장 큰 고민은 뭡니까.

“이 단위를 계속 운영하기 위한 재정적 문제가 제일 크죠. 사무실 월세 부담이 커요. 자기 건물들을 갖고 있는 게 아니잖아요. 가끔 언론에 시민단체들이 정부 돈 받아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처럼 나오던데 저는 동의하기 어렵더군요. 우리 같은 사람들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돈을 개인적으로 쓸 수 없어요. 빤히 다 보는데 누가 그렇게 돈을 씁니까. 오히려 내 돈이 들어가면 들어갔지.

다만 미흡한 건 있어요. 시민사회 인사들이 회계나 세무 이런 분야에 능통한 사람들이 아니라 잘 몰라서 못하는 건 있죠. 그런 부분들이 가끔 문제가 되고 저도 그 부분은 이해하거든요.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다 싶긴 한데, 솔직히 돈이 좋았으면 머리 써서 돈 잘 버는 일 하면서 살지 뭐 한다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이 일 한다고 몸 고생, 마음고생 하면서 살겠습니까. 자기가 살아온 삶이 있는데 누가 수십억 수백억 준다고 얼굴에 철판 깔지 않는 이상 이러고 살지 않죠.”

- 공 대표님 개인적인 고민은 뭔가요.

“개인적 고민이라...50대 들어와서 이런 고민이 들어요.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활동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 말이에요. 그러니까 더 활동 안 하겠다가 아니라 나이를 더 먹으면 나는 어떤 활동을 하는 게 맞을까 이런 고민들을 하기 시작한 거죠. 평균 수명이 쓸데없이 너무 길어요. 하하. 얼마 전 몇몇 교수님들과 선배시민협회를 만들었어요.”

- 선배시민협회요?

“네, 우리나라가 노인에 대한 인식이 너무 안 좋잖아요. 그저 나이 든 사람, 더는 쓸모가 없는 사람 이런 정도의 인식이랄까요. 세상을 살아온 인생 선배 시민으로서 어떤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고, 또 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든 거죠. 외국 같은 경우는 오히려 나이가 있는 분들이 모여 토론하고 정당, 정치세력에게 어떤 요구도 하고 목소리를 내면서 굉장히 활발하게 움직이더라고요. 사회가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기도 했고, 이제 선배들이 시대에 맞게 어떤 역할을 해야할지 계속 고민하고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NGO저널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NGO저널이 굉장히 반가워요. 우리 사회에 NGO든 NPO든 이런 단위들이 많이 살아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사회가 건강해질 수 있으니까요. 그런 목소리들이 NGO저널을 통해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NGO저널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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