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重에 '끝장 보자'는 한화오션... '군사기밀 유출' 논란 격화
상태바
HD현대重에 '끝장 보자'는 한화오션... '군사기밀 유출' 논란 격화
  • 박진철, 노경민
  • 승인 2024.03.19 06: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경pick] 7.8兆 KDDX수주 갈등에 멍드는 K조선
HD현대重-한화오션, '기밀 유출 공방' 氣싸움
한화오션, 경찰청 국수본에 HD현대중공업 고발
"HD현대重 임원 조직적 개입" 설명회까지 개최
HD현대重 "직원 9명만 유죄... 짜맞추기식 주장"

조선업계 내 대표 방산 라이벌로 일컬어지는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의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7조8000억원 규모에 달하는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 입찰을 앞둔 상황에서 '군사기밀 탈취·유포' 사건을 두고 첨예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HD현대중공업에 대한 제제 심의가 마무리됐지만, 방위사업청(이하 방사청)은 HD현대중공업에 대한 부정당 제재를 하지 않았다. 이에 한화오션은 임원 개입 가능성을 두고 HD현대중공업을 경찰에 고발했다. HD현대중공업도 이에 반박하며 사태는 격화하는 모양새다.

이번 사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군사기밀 유출 사건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HD현대중공업 소속 직원 9명은 2012년~2015년 방위사업청, 해군본부 등을 찾아가 함정사업 관련 군사기밀 12건을 불법 취득·공유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이 빼돌린 정보 중에는 한화오션(당시 대우조선해양)이 제작한 2000페이지 분량에 달하는 KDDX 개념설계도(3급 군사기밀)가 포함됐고, HD현대중공업은 이를 KDDX 입찰 참가에 필요한 사업제안서 작성 등에 활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직원 9명은 2022년 11월 1심 유죄를 선고받았고, 2023년 11월 최종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에 따라 HD현대중공업은 1심 결과가 나온 2022년 11월부터 2025년 11월까지 모든 방산 사업 무기체계 제안서 평가에서 보안 감점 1.8점을 페널티로 적용받게 됐다. 평가에서 소수점 차이로 희비가 엇갈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벌점 1.8점 감점은 HD현대중공업으로서는 큰 대가일 수밖에 없다.

한국형 차기구축함 조감도(KDDX). (사진=HD현대중공업)
한국형 차기구축함 조감도(KDDX). (사진=HD현대중공업)

 

HD현대重 직원 9명, 군사기밀 유출 최종 유죄

이번에 진행되는 KDDX 사업은 2030년까지 6000톤급 미니 이지스함 6척 실전 배치를 목표로 하는 7조8000억원 규모의 프로젝트다. 선체부터 전투체계, 다기능 레이더를 비롯해 각종 무장까지 모두 국내 기술로 건조하는 첫 국산 구축함이라는 데 큰 의미가 있다. 게다가 군함은 국방 계획에 따라 특정 시기에 발주하기 때문에 이번 프로젝트를 놓치면 언제 방산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다. 

KDDX 사업에서 한화오션은 개념설계, HD현대중공업은 기본설계를 맡아왔다. 그런데 올해 하반기 상세설계와 초도함 건조를 수행할 기업 선정을 앞두고 기밀 유출 사건이 터졌다. HD현대중공업 직원들 중 일부는 최종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후 총 6척의 신형 호위함 건조사업 중 5, 6번함 건조를 위한 우선협상 대상자에 한화오션이 선정됐다.  

방사청은 올해 2월 계약심의위원회를 열고 HD현대중공업에 대한 입찰 참가제한 제재 심의를 진행했다. 그 결과 "청렴 서약 위반의 전제가 되는 '대표·임원의 개입'이 객관적 사실, 즉 형사처벌로 확인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행정지도'를 의결했다.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의 기술 유출이 개인의 일탈이라고 본 것이다. 방사청은 “군사기밀보호법 위반이 국가계약법 제27조 1항 1호 및 4호상 계약 이행시 설계서와 다른 부정 시공, 금전적 손해 발생 등 부정한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제척 기간을 지남에 따라 제재 처분할 수 없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한화오션은 6일 장교동 한화빌딩에서 "KDDX 개념설계 유출 등과 관련해 HD현대중공업의 임원이 개입된 사실을 수사해 처벌해 달라는 고발장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에게 제출했다"면서 이와 관련한 설명회를 진행했다. 사진=시장경제 DB
한화오션은 6일 장교동 한화빌딩에서 "KDDX 개념설계 유출 등과 관련해 HD현대중공업의 임원이 개입된 사실을 수사해 처벌해 달라는 고발장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에게 제출했다"면서 이와 관련한 설명회를 진행했다. 사진=시장경제 DB

 

한화오션 "HD현대重 임원 개입"... 경찰 고발

한화오션은 5일 "KDDX 개념설계 유출 등과 관련해 HD현대중공업의 임원이 개입된 사실을 수사해 처벌해 달라는 고발장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에게 제출했다"면서 이와 관련한 설명회를 진행했다. 

한화오션은 "2012년~2015년 현대중공업 직원들이 여러 차례 방위사업청, 해군본부 등을 방문해 KDDX 개념설계 보고서 등 군사기밀을 불법 탈취했다. 이를 비밀 서버에 올려 광범위하게 공유하면서 입찰 참가를 위한 사업제안서 작성 등에 활용했음은 명백히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 사실"이라며 "HD현대중공업 고위 임원의 명시적 또는 묵시적 지시나 관여 없이 수년간 군사기밀을 탈취해 회사 내부에 비밀 서버를 구축·운영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5일 오전 서울 중구 한화빌딩에서 열린 구승모 한화오션 법무팀 변호사가 한국형 차기구축함(KDDX) 기밀 유출 관련 HD현대중공업 고발장 제출에 대한 입장 설명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5일 오전 서울 중구 한화빌딩에서 열린 구승모 한화오션 법무팀 변호사가 한국형 차기구축함(KDDX) 기밀 유출 관련 HD현대중공업 고발장 제출에 대한 입장 설명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5일 열린 입장 설명회에서 한화오션은 자체적으로 확보한 군사안보지원사령부 특별사법경찰(특사경)의 피의자 신문 조서를 공개하며 HD현대중공업 임원이 군사기밀 유출에 관여한 정황이 확인됐다고도 주장했다. HD현대중공업은 불법 취득한 기밀자료를 내부 비인가 서버에 보관하며 보안 감사 때 네트워크를 단절하는 식으로 보안 검사를 피해 왔는데 이런 서버를 구축하고 관리하는 예산은 임원 결재 없이 사용될 수 없다고 한화오션은 강조했다.

한화오션은 2018년 12월 군사안보지원사령부 특사경이 HD현대중공업 직원을 신문한 내용이 담긴 공무원형사사건 기록도 공개했다. 해당 기록에 따르면 HD현대중공업 직원은 "군 실무자에게서 군사비밀을 제공받아 열람 후 불법으로 촬영해 탐지 수집했고 이를 국내출장 복명서를 통해 보고했으며 부서장, 임원, 중역이 결재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군사 비밀 자료를 열람하고 동영상 촬영해 활용한 일을 상급자들도 모두 알고 있었다"면서도 군사기밀 유출이 조직적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라고 진술했다.

한화오션은 HD현대중공업 임원을 고발한 데 대해 "HD현대중공업이 자행한 조직 차원의 불법행위를 이렇게 흐지부지 넘긴다면, 정부가 유착 관계 속에 조직적으로 이뤄지는 관행과 불법행위에 손을 놓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꼴"이라며 "국기 문란을 바로 잡고 국가 안보를 세우는 원칙을 정립하자는 취지"라고 강조했다.

HD현대중공업은 같은 날 이번 한화오션의 고발은 KDDX 사업 입찰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인 한화오션이 이를 극복하고 단독 입찰에 나서기 위한 술수라고 맞섰다. 이대로라면 방위사업 규정 86조에 따라 2020년 기본설계를 따낸 HD현대중공업이 상세설계와 초도함 건조를 맡는 게 통상적인 순서기 때문이다.
 

HD현대중공업이 지난해 4월 울산 본사에서 진수한 3600톤급 신형 호위함 1번함 '충남함' 사진. 사진=HD현대
HD현대중공업이 지난해 4월 울산 본사에서 진수한 3600톤급 신형 호위함 1번함 '충남함' 사진. 사진=HD현대

 

HD현대重, "한화오션 짜맞추기식 호도 유감"

HD현대중공업은 "한화오션이 공개한 내용은 정보공개법 위반 소지가 있을 뿐 아니라 수사 기록과 판결문을 일방적으로 짜깁기해 사실관계를 크게 왜곡하고 있다"면서 "임원이 공범이 아니라는 것은 기무사와 검찰의 2년 반에 걸친 수사와 재판을 통해 확인됐다. 확정판결을 받은 사안을 짜맞추기식 주장과 논거로 호도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사내 특수선사업부 직원들은 군사 Ⅱ급 비밀까지 작성·열람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고 있고, 방사청·군 관계자 업무 협의 과정에서는 수시로 군사기밀 자료가 활용되고 있다. 출장 과정에서 특정 자료를 열람했다고 문제 삼는 것은 지나친 논리적 비약"이라고 반박했다.

HD현대중공업은 한화오션이 한화로 편입된 이후 방산 수직계열화 전략을 토대로 KDDX를 포함한 특수선 사업에 적극적인 점이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 작용한 것으로도 해석한다. 최근 기밀 유출 혐의 지적을 시작으로 한화오션이 이례적인 언론 플레이를 통해 경쟁 구도를 형성하는 데에도 부담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방산이 한화오션 내에서 큰 축을 차지하지 않을뿐더러 경쟁 구도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무엇인지 의문"이라고 전했다.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전경. (사진=한화오션)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전경. (사진=한화오션)

한화오션은 입장문 발표 다음 날인 6일에도 경남 거제시청과 경남도청에서 잇따라 기자회견을 열고 엄정한 경찰 수사와 방산 시장 건전성 확보를 재차 강조했다. 한화오션 측은 "설명회에서 사용한 자료는 군에서 제공한 원본 상태 그대로를 공개한 것"이라며 "HD현대중공업이 반성이나 사과는 없이 직원 개인 비리인 것처럼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취급하는 건 아쉬운 측면"이라고 토로했다. 

한화오션은 "제공받은 기록 전체를 공개하는 데 아무런 이의가 없다. 처벌받은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은 기록 전체를 갖고 있을 테니 기록 전체를 공개해서 반박하면 될 일"이라며 "애초에 HD현대중공업 측에서 판결문열람 제한신청을 하는 등 기록에 대한 접근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려 했다"고도 덧붙였다.

한편, 이번 사태를 두고 업계에서는 국내 조선업계 1, 2위를 다투는 기업들이 밥그릇 싸움을 하느라 K조선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한국 조선업계가 중국에 밀려 2위에 머무르는 상황에서 국내 조선업계 1, 2위를 다투는 기업들이 KDDX 등 국내 시장 독점을 위해 출혈 경쟁을 벌이는 것이 과연 이득이 되겠느냐"며 "이런 신경전이 해외 기업들에도 좋은 이미지로 남지는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앞으로 경찰 수사 결과 HD현대중공업 임원이 군사기밀을 유출하는 과정에 개입한 정황이 확인되면 방사청은 재심의를 청구할 수 있다. HD현대중공업이 방사청 입찰을 제한받게 되면 특수선 시장은 한화오션이 독점할 수도 있다. 이러한 우려와 관련해 한화오션 측은 "절대적인 수주량 자체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HD현대중공업이 시장 독점을 이야기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답변했다. 

 


관련기사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