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황 개선 불구 해외 철강사만 배 불린다" [시경p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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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업황 개선 불구 해외 철강사만 배 불린다" [시경pick]
  • 박진철 기자
  • 승인 2024.02.26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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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업 '호황' 불구 신음하는 철강업계②]
수입 후판 점유율 갈수록 상승... '조선 의존도' 낮춰야
현대제철 '조선용 후판 비중'... '50%→45% 미만' 감소
'해상풍력 구조물' 등 고부가 제품군, 미래 전망 밝아

<편집자 註> 고부가가치 선박을 중심으로 한 선별 수주로 수익성을 강화하고 있는 국내 조선산업은 지난해 2년 연속 글로벌 수주 1위를 중국에 내주면서도 '내실'에서는 앞섰다는 평가를 받았다. 

조선산업에 있어 가장 중요한 원자재가 바로 후판이다. 하지만, 이를 책임지는 국내 철강업계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하다. 조선산업 업황 개선에도 불구하고 국산 후판 판매량은 뒷걸음질 치고 있기 때문이다. 

후판 내수 판매 부진에는 중국산을 필두로 한 수입산 후판과 선박 블록 수입이 가장 큰 변수로 꼽힌다. 수익을 위해 더욱 싼 값과 저렴한 인건비를 찾아 움직이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다만, 국내 조선산업과 철강산업의 '희비 교차'를 더 깊이 이해하려면 16년 전 어긋났던 '약속'까지 들여다봐야 한다. 

2007년, 당시 박규원 한국조선협회 회장은 공개적으로 국내 철강업계에 후판 설비 증설을 요청했다. 2000년대 초, 국내 조선업계는 선박 수주량 급증 속에 후판 수급에 사활을 걸고 있었다. 철강업계 역시 조선업계의 이러한 요청을 반영해 후판 설비 추가 증설에 나섰다. 이후 결과는 예측과 달랐다.

증국 특수가 끝나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겹치면서 국내 조선업 침체가 본격화되자, 후판 설비 증설 후폭풍은 고스란히 철강업계를 덮쳤다.

천신만고 끝에 국내 조선업계가 고부가가치 선박을 중심으로 기사회생하고 있지만, 16년 전과는 사정이 사뭇 다르다. 국산 후판보다는 값이 저렴한 중국산 후판 등 수입산에 눈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산업에 오랜만에 찾아온 '호황'의 뒤에서 신음하고 있는 국내 철강산업의 어려움을 <시장경제>가 두 편에 걸쳐 다뤘다.
 

국내 조선업황 개선... 열매는 해외 철강사가?

중국산 후판 수입 물량이 급증하는 데는 '가격'의 영향이 가장 컸다. 

지난해 국내 철강사와 조선사의 후판 협상 가격은 톤당 90만~100만원 수준이었던 데 반해, 중국산 후판은 톤당 80만원대로 저렴한 수준을 유지했다. 후판은 선박 제작 비용의 20%를 차지할 만큼 중요한 원자재이다. 단가가 저렴할수록 조선업계에 유리하다.

현대제철 제1고로. 사진=현대제철
현대제철 제1고로. 사진=현대제철

업계에 따르면 포스코 등 철강업계와 HD현대중공업 등 조선업계는 지난해 하반기 후판 가격 협상에서 톤당 90만원 중반 수준의 가격에 합의했다. 상반기에는 100만원에 근접한 선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반기 후판 가격 협상은 여름쯤 마무리하는 것이 관례였으나, 지난해에는 조선-철강업계 양측의 의견 차이가 커 2023년 말까지 협상을 지속했다.

앞서 언급한 대로 후판 가격 하락의 주요 원인으로는 중국 등에서 만들어진 저가 외국산 후판 수입 증가를 꼽을 수 있다. 전체 후판 수입에서 중국산이 차지하는 비중도 2021년 29.7%, 2022년 38.3%에 이어 2023년에는 56.4%까지 확대됐다. 반면, 일본산 후판 점유율은 2021년 68.3%, 2022년 60.4%, 2023년에는 43.4%로 내림세를 유지하고 있다.

조악하다고 인식된 중국산 후판 품질 개선도 수입 증가세에 힘을 실었다. 이런 영향으로 국내 조선업계에서는 중국산 선박용 블록을 수입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선박용 블록은 후판을 이어 붙여 만드는 제품이다. 중국산 선박용 블록을 이미 사용하던 삼성중공업과 한화오션과 달리 국내산 블록만 써 왔던 HD현대중공업까지 중국산 선박용 블록 수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제철 직원이 9% Ni(니켈) 후판 제품을 점검하고 있다.사진=현대제철
현대제철 직원이 9% Ni(니켈) 후판 제품을 점검하고 있다.사진=현대제철

철강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후판 수입량은 약 199만톤 수준으로 전년 대비 17.7% 증가했다. 일본산 수입이 86만톤에 그쳐 전년 대비 15.5% 줄었으나 중국산 수입은 112만톤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73.3% 늘었다.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수입재 가격이 국산 가격 대비 낮아 수입량이 늘어난 상황”이라면서 “제품 품질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아 수요업계 입장에서 수입재 선호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철강업계는 조선업계의 업황 개선 수혜를 국산 제품이 아닌 수입재가 받았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후판 수입량은 200만톤에 근접했다. 2016년 216만톤을 기록한 이후 7년 만이다. 반면 지난해 국산 후판 내수 판매는 21년에 비해 소폭 줄어든 628만톤 수준으로 전망된다. 최대 수요처인 조선업계가 불황기를 맞은 2018~2019년 당시에도 후판 내수 판매량이 700만톤을 넘었던 사정을 고려하면 지난해 실적 부진은 더 도드라진다.

업계 관계자는 “조선용 공급 가격이 유통가격 대비 낮은 상황에서 수입재 가격은 더욱 낮은 수준을 형성하고 있다”며 “국내 제조업계가 해외 저가재에 대응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이 때문에 현대제철 등 국산 후판 제조사들은 수입재 대비 가격 경쟁력 열위에 놓인 점을 인정하며 비조선용 후판 시장 개발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올해 수입 후판 물동량은 전년 대비 소폭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중국의 철강 수출이 9000만톤을 넘기며 역대 최대 수준을 달성했지만, 올해 수출은 감소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중국 내 철강재 공급 과잉 우려와 수출입 시장 가격 변화에 따라 국내 중국산 후판 수입량은 언제든 증가할 수 있어 우려를 지울 수 없는 상황이다.   
 

조선업계, "후판 설비 증설해 달라"... 16년 전 외침은 외면?

"포스코와 동국제강 등이 최근 후판 설비 증설에 나섰지만, 선박 수주량이 급증하고 있어 후반 공급이 여전히 부족할 것으로 전망돼 철강업체에 추가 증설을 요청했다."

2023년 후판 내수 판매량이 예년 대비 100만톤 줄어든 시점에서 무슨 이야기인가 싶지만, 이는 16년 전인 2007년, 당시 박규원 한국조선협회 회장(한진중공업 사장)이 '조선의 날' 행사에서 한 말이다. 

1월 17일 포항 후판공장의 ‘신재생에너지용 강재 생산공장’ 인증 명패 수여행사에 참석한 포스코, DNV 임직원이 기념촬영을 하고있다. 사진=포스코
올해 1월 17일 포항 후판공장의 ‘신재생에너지용 강재 생산공장’ 인증 명패 수여행사에 참석한 포스코, DNV 임직원이 기념촬영을 하고있다. 사진=포스코.

2000년대 초 당시 조선업계는 선박 수주량 급증 속에 후판 수급에 사활을 걸었다. 

국내 조선업계는 2000년대 초 국제 무대의 초대형 발주 물량 중 대부분을 독식하는 등 수주 호황을 지속했다. 그러나 조선용 원자재 중 가장 많은 양이 들어가는 후판은 만성적인 공급 부족에 시달렸다. 일본의 경기 회복과 중국의 수입 확대 등도 이런 현상을 더욱 부추겼다.

조선협회에 따르면 2007년 당시 국내 조선업계의 후판 수요는 752만톤이었다. 하지만 포스코와 동국제강 등 국내 철강업체 공급량과 해외 수입량을 모두 합쳐도 공급이 90만톤가량 모자랐다.

2011년에는 후판 공급 부족량이 무려 370만톤 이상이 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다. 후판 부족이 업계의 핫이슈로 부각되자 관련 부처인 당시 산업자원부에서도 "철강업계의 후판 증설은 원칙적으로 업계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문제지만 현재 추세라면 추가로 생산을 늘려도 부족하다"고 우려했다. 

철강업계는 당시 조선업계의 이러한 요청과 후판 수급을 둘러싼 정부 당국의 우려 섞인 목소리를 반영해, 후판 설비 추가 증설에 나섰다. 그러나 이후 결과는 예측과 달랐다. 

조선업계의 요청과 정부의 압박 속에 철강업계는 다소 찜찜한 후판 설비 증설에 나섰지만 결론은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중국 특수가 끝나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조선업 침체가 본격화하자 후판 설비 증설의 후폭풍은 철강업계를 덮쳤다. 

포스코, 현대제철, 동국제강의 후판 생산능력은 연산 약 700만·350만·150만톤으로 총 1200만톤을 넘어섰지만, 지난해 조선용을 비롯해 전체 후판 수요는 700만~800만톤을 조금 넘는 수준에 그쳤다. 이마저도 국산 후판은 600만톤 수준의 시장 점유율을 기록했을 뿐이다. 나머지 200만톤 이상은 중국산을 중심으로 한 수입 후판이 차지했다.

더구나 국내 조선업은 중국에 글로벌 수주 1위를 빼앗기는 등 전반적인 후판 수요 감소에 접어들었다. 그나마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 수주에 주력하면서 양적인 부족을 질적인 수익성 강화로 보전하고 있는 모양새다.
 

수입 후판 조여오는 시장, '조선업 의존도' 줄여야

국내 후판업계는 판매 부진과 수익성 악화가 지속되는 조선용 후판 시장 규모를 줄이는 한편 비조선용 판매 확대에 노력하고 있다. 후판 제조업계는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 시장 개발과 해상풍력 구조물 등 신규 수요 확보를 통해 시장 다각화와 수익성 개선에 나서고 있다. 

중국과 일본산 후판 수입 증가와 중국산 선박 블록의 국내 조선 시장 침투 속에서도 수익성을 개선하고 새로운 수요를 개척하기 위한 노력이다. 

현대제철은 조선용 후판 판매 비중을 기존 50% 이상에서 45% 미만까지 줄이겠다고 밝혔다.  

현대제철 인천공항 전기로. 사진=현대제철
현대제철 인천공항 전기로. 사진=현대제철

철강업계 한 관계자는 "에너지 대전환이라는 글로벌 트렌드 속에서 후판 제품의 신수요 개발에도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관련 업계에서는 풍력 에너지 시장이 연평균 약 15% 수준의 고속 성장을 구가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DS투자증권은 "미국의 경우 해상 풍력 산업 성장률이 82%를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해상풍력의 대형 구조물을 지탱하려면 두꺼운 후판이 필요하다. 해상에 설치되기 때문에 부식 우려가 있는 만큼 이를 방지할 수 있는 고도의 기술력도 동반돼야 한다. 

이와 관련 포스코 포항제철소 후판공장은 올해 1월 3일 노르웨이 선급협회(DNV)로부터 신재생에너지용 강재 생산공장 인증(Shop approval in renewable energy)을 받았다. 이로써 지난 2022년 7월 광양제철소 후판공장에 이어, 포스코 전체 후판공장이 신재생에너지용 강재 생산공장으로 인증을 받게 됐다.

업계에 따르면 현대제철은 당진제철소 후판 공장에 신규 투자를 단행, 조선용 후판 등을 생산하는 열처리 능력을 크게 높일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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