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 속 새출발기금 10월 시작... "고의 연체자 걸러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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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 속 새출발기금 10월 시작... "고의 연체자 걸러내야"
  • 양일국 기자
  • 승인 2022.08.29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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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일 이상 연체자 순부채 60~90% 감면
부실우려차주는 고금리·연체이자 감면
당국, "질적 심사로 고의 연체자 가려낼 것"
금융권, 기금 취지 공감하나 도덕적 해이 우려
금융위원회. 사진=이기륭 기자.
금융위원회. 사진=시장경제DB

코로나로 인한 채무 부담을 겪는 소상공인들의 재기를 위한 '새출발기금 채무조정 프로그램'이 진통 끝에 10월부터 시작된다. 앞서 도덕적 해이를 조장한다는 지적이 나오자 정부는 발 빠르게 엄격한 심사과정을 도입하고 고의 연체자를 가려내기 위한 추가대책을 내놨다.

금융권에서는 대규모 부실을 막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대체로 공감하면서도, 고의 연체 등 도덕적 해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전날 금융위원회는 소상공인 대상 맞춤형 채무조정 프로그램 '새출발기금'을 10월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영업시간 제한 등 정부 방역 조치에 협조하는 과정에서 부득이 대출을 받았다가 상환이 어려워진 소상공인의 채무 부담을 경감해준다는 취지다.

기존 신용회복위원회의 채무조정 제도와 유사하며, 코로나 피해를 본 개인사업자와 소상공인(법인 포함) 중 대출상환에 어려움이 있는 취약차주를 대상으로 한다. 신청을 위해서는 사업자를 위한 재난지원금·손실보상금을 받았거나, 소상공인 대상 대출의 만기연장·상환유예 조치를 이용한 이력을 증빙해야 한다. 

채무조정 대상은 크게 부실차주와 부실우려차주로 구분된다. 90일 이상을 연체한 부실차주의 경우 빚이 재산보다 많고 적음에 따라 지원폭을 다르게 했다. 먼저 빚이 재산보다 적은 차주는 이자와 연체이자 전액을 원금의 약 7% 선에서 갚도록 하고, 이외의 이자는 모두 면제해준다. 현재 신용회복위원회의 채무조정 방식과 동일하며 원금 감면은 없고, 최대 1년 거치, 10년 분할상환이 가능하다.

빚이 재산보다 많은 차주는 이자와 연체이자 전액, 그리고 원금도 감면된다. 원금은 재산을 초과한 보증·신용부채만 최대 80%(취약계층은 90%)까지 감면해준다. 이 때의 재산은 실제 재산이 아니라 개인회생절차에서 적용되는 청산가치를 기준으로 한다. 이른바 청산가치는 차주의 재산에서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주거비용과 생계비 등을 제외한 값이다. 서울의 경우 주거비용은 5,000만원으로 책정되며 지역에 따라 상이하다. 생계비는 통상 중위소득의 60%로 본다.

단, 부실 차주의 채무 가운데 금융회사가 담보권을 가진 담보대출은 원금조정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 외에도 정부는 제도 악용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신청 횟수를 1회로 제한하고, 허위 서류를 제출하거나 고의로 연체할 경우 채무조정을 무효화하는 방안을 도입했다. 정기적인 재산조사를 통해 추후 은닉재산이 발견될 경우에도 기존 채무조정을 무효 처리되도록 했다.

채무조정을 받는 연체 90일 이상 부실 차주의 대출채권은 새출발기금이 금융회사로부터 매입하는 방식이다. 금융회사에 이미 장기 연체자로 등록된 90일 이상 연체 부실 차주는 장기연체정보는 해제되지만 2년간 채무조정 프로그램을 이용했다는 정보를 신용정보원에 등록하고 이를 금융권과 신용정보회사에 공유하도록 했다. 

다음으로 대출상환에 어려움이 있지만 아직 90일 이상 연체는 하지 않은 '부실 우려 차주'의 경우 고금리 대출을 중·저금리로 낮춰주기로 했다. 신용점수에 영향이 적은 연체 30일 이내인 경우 연 9% 초과 금리에 한해 연 9%로 조정해준다. 신용점수가 본격적으로 하락하는 연체 30일~90일 이내 연체자는 상환 기간 내 연 3∼4%대의 단일금리로 하향 고정된다. 부실우려차주는 원금조정 대상에서 제외되며 조정 내용에 따라 신용 불이익도 발생한다.

금융위는 30조원 규모의 새출발기금 지원으로 약 30만∼40만명의 소상공인이 상환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금융위는 10월 중 새출발기금 접수를 위한 통합 온라인 플랫폼을 개설하고,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와 한국자산관리공사 사무소에서 현장 상담과 접수도 진행할 예정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신청자가 지원대상 차주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10월 새출발기금 온라인 플랫폼에서 쉽고 빠르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해서 최대한 혼란을 줄여갈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권, 일부 우려에도 대체로 환영

28일 정부의 '새출발기금' 세부 운용계획이 발표되자 금융권에서는 일부 질적심사에 따른 우려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가 감지됐다. 이미 금융권 안팎에서는 소상공인들의 코로나 부실 규모가 커서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는 공감대가 있어왔다.

복수 금융권 관계자들은 부실 처리 부담이 경감된 데 대해 안도하는 분위기다.금융위는 새출발기금의 채무조정 한도를 당초 최대 25억원에서 도덕적 해이 논란이 일자 15억원으로 줄였다. 60%에서 90%에 이르는 원금 감면 규모는 비슷하지만 순부채에 한해서만 감면하는 선으로 한 발 물러섰다. 특히 90% 감면 적용대상은 기초수급자, 중증장애인, 70세 이상 저소득 고령자로 국한하는 등 상당수준의 '안전장치'가 확보됐다는 반응이다.

한 대형 은행 관계자는 "당초 발표했던 계획안에 비해 금융당국이 모럴해저드를 방지하기 위한 실효적인 대책들을 마련한 것으로 본다"면서 "차주들이 단순히 대출상환을 미룬다고 해서 빚이 탕감되는 것이 아닌데다가, 이번 기회에 어떻게든 채무 부담을 덜지 못해 연체자가 되면 향후 더욱 고통이 가중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금융위가 채무조정신청 시 고의 연체자를 걸러내기 위해 도입한 '질적 심사'다. 금융위는 연체기간이 90일을 넘긴 부실차주와 연체기간이 10~90일로 비교적 짧은 부실우려차주로 구분해 지원하기로 했는데 문제는 연체가 고의인지 불가피한 상황인지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당국은 새출발기금 추진 방침이 발표된 지난 7월 이후 고의로 연체를 한 경우를 이른바 '질적 심사'를 통해 걸러낸다는 방침이다. 현재 금융위는 질적 심사의 세부적 판단 기준은 도덕적 해이 방지 차원에서 공개하지 않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실효적으로 고의 연체자를 가려내지 못할 경우 성실하게 빚을 갚은 이들을 역차별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면서 "객관적인 항목과 수치로 판단하는 양적심사에 비해 질적 심사는 자칫 '뽑기'라는 식의 반발이 나올 수 있고, 초기 정책적 혼란도 예상된다"고 말했다. 

소상공인 코로나지원 대출 관련 한 은행 창구 사진=연합뉴스 제공
소상공인 코로나지원 대출 관련 한 은행 창구 사진=연합뉴스 제공

일각에서는 도덕적 해이를 원천적으로 방지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 시중은행 여신담당자는 "일단 (신청접수 후) 몇 달은 지켜봐야 되지 않겠나"라고 신중한 반응을 보이면서도 "차주가 성실하게 채무를 상환하고 있는지를 기준으로 부담을 경감시켜주는 것이 '정석'인데 재산이나 연체기간을 기준으로 돕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일부 논란에도 불구하고 금융권에서 새출발기금 등 코로나발(發) 부실 대책이 불가피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대체로 공감대가 형성돼있다는 전언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다중채무 상황에 놓인 자영업자는 41만4,964명으로 작년 12월의 28만6,839명과 비교해 약 44%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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