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풍-고려아연 신의 '와르르'... 72년 가문불문율 누가 깼나 [시경p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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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풍-고려아연 신의 '와르르'... 72년 가문불문율 누가 깼나 [시경pick]
  • 박진철 기자
  • 승인 2024.03.14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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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아연, 영풍 계열사지만 '독립 경영'
창업주 달라... 설립 초부터 '한 지붕 두 가족'
영풍 장씨, 고려아연 최씨 일가 '상호 신뢰'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우호지분 크게 늘려
고려아연 지배구조 변동에 영풍 측 거센 반발
영풍 측 "선대부터 이어진 합의정신 깨트려"
고려아연, 주총서 정관변경 시도... '표 대결' 관심

서울 강남구 논현동 영풍빌딩에는 한 지붕 두 가족인 영풍과 고려아연이 함께 입주해 있다. 1949년 동업을 시작한 영풍 장씨와 고려아연 최씨 집안은 쉽게 분리할 수 없는 복잡하고 깊은 사업관계를 맺고 있다.

고려아연은 영풍그룹 계열사 중 한 곳이지만 창업주가 달라 그동안 분리 경영을 해왔다. 양측은 핵심 계열사에 대해 서로 우호 지분을 보유, 깊은 신뢰관계를 형성했다. 

70년간 이어진 한 지붕 두 가족 사이에 균열이 시작된 건 2020년대 들어서면서다.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 측이 우호지분을 대폭 늘린 것이 계기가 됐다. 

최 회장 측은 현대자동차와 한화, 트라피구라 등 국내외 기업에 손을 내밀어 우군을 확보했다.

두 기업 오너 일가는 대를 이어 주요 현안에 대해 보조를 맞췄다. 신규사업 진출, 지분 변동 등 굵직한 현안이 있을때면 두 집안의 대표자가 의견을 조율하며 잡음 발생 자체를 사전 차단했다. 그러나 최 회장 측의 우호지분 확대는 사전 조율 없이 이뤄진 측면이 있다.

지난해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할 당시 고려아연 이사회 멤버인 영풍 장형진 고문이 크게 반발한 사실은 두 가문 사이 갈등을 시사하는 대표적 사건이다. 

그 갈등은 더 골이 깊어진 모습이다. 올해 정기주주총회를 앞두고 고려아연 측의 배당금 지급과 정관 변경 안건에 영풍 측은 이견을 나타내면서 표대결도 불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최윤범 회장과 장형진 고문의 고려아연 지분율은 우호지분을 합쳐 각각 30%대 초반으로 엇비슷하다. 두 사람의 임기 역시 모두 3월에 끝난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사진=연합뉴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사진=연합뉴스

 

정관변경, 최윤범 회장 경영권 강화 수단인가?

주주총회 안건을 놓고 영풍과 고려아연의 기싸움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고려아연 소수주주들을 상대로 영풍과 고려아연 오너 일가가 각각 주총 의결권 위임을 요청하고 있다는 증언도 들린다. 

고려아연은 올해 주총에서 주당 5000원을 결산 배당금으로 지급하고, 신주 발행 대상을 외국 합작법인으로 제한하고 있는 현재 정관을 삭제하는 안건을 상정했다.

영풍 장 고문 측은 "고려아연의 정관 변경안이 주주권익을 해친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고려아연 최 회장 측은 "영풍 역시 2019년 같은 내용으로 정관을 바꿨음에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고려아연 경영에 간섭하고 있다"며 불편한 심경을 숨기지 않았다.

영풍은 "정관을 변경한 것은 맞지만 ‘신주 발행 대상 제한'과 관련된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며 "정관을 변경한 것은 자본시장법에 따라 내용을 세분화하기 위해서였다"고 받아쳤다.

가장 큰 쟁점은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할 때, 대상을 해외 합작법인으로 제한한 정관 규정을 삭제하는데 있다. 고려아연은 “표준정관에 맞춰 문구를 전반적으로 정비하는 차원”이라고 해명했으나, 영풍 측은 "최윤범 회장 우호지분율을 높이려는 의도가 아니냐"며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영풍 측 관계자는 "고려아연 의도대로 정관이 변경돼 아무런 제한 없이 제3자 배정 방식의 유상증자가 이뤄진다면, 기존 주주들이 보유한 주식가치가 더욱 희석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해당 안건은) 전체 주주이익을 해치는 것은 물론이고 현 경영진의 경영권 방어라는 사적 편익을 도모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일 위험이 대단히 크다"고 부연했다. 

고려아연은 2022년부터 한화, 현대차 등 국내 기업 해외법인을 상대로 한 유상증자, 한화증권·한국투자증권 등과의 자사주 맞교환으로 우호지분을 대거 확보했다. 이렇게 확보한 최 회장 측 우호지분은 발행주식 총수의 약 16% 규모이다. 최 회장 측이 제3자 배장 유상증자 등을 통해 우호지분을 크게 늘리면서 고려아연에 대한 영픙 측 지분율은 기존 35%에서 32%대로 낮아졌다.

지난 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4 인터배터리(INTER BATTERY)' 고려아연 부스에 배터리 생산 과정을 표현한 모형이 전시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4 인터배터리(INTER BATTERY)' 고려아연 부스에 배터리 생산 과정을 표현한 모형이 전시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반면 최 회장은 본인과 특수관계인, 우호지분을 포함 약 33%의 의결권을 확보했다. 단순 표 대결을 한다면 최 회장 측이 다소 유리한 구도이다. 다만 정관변경은 상법상 주주총회 특별 결의 사항이라, 통과를 장담하기 어렵다.  

상법상 정관변경을 위해서는 출석 주주 의결권 3분의 2 이상의 수와 발행주식총수 3분의 1 이상이 필요하다(같은 법 434조).

정관변경 안건에 대한 양측 입장은 절충점을 찾기 어려울만큼 간극이 크다. 영풍 측은 고려아연의 정관변경 안건에 "동업관계에서 유지돼 온, '양사 경영진 합의 아래 정관변경'이란 원칙을 무시한 행위"라며 비판 수위를 높였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72년 동안 최씨와 장씨 두 가문의 동업이 가능했던 이유는 고려아연은 최씨 일가가, 영풍은 장씨 일가가 각자 독립 경영 체제를 유지해 왔기 때문"이라며 "이번 사태 본질은 '독립 경영 보장'이란 동업자 간 불문율을 깨뜨리고 신의를 저버린 데 있다"고 말했다.
 

영풍-고려아연 '시가배당율' 분석, 시각차 뚜렷   

고려아연은 이번 주총에 주당 5000원을 결산 배당금으로 지급하는 안건을 상정했다. 중간 배당 1만원을 합하면 1만5000원으로, 전년(2만원)과 비교하면 5000원이 줄어든다. 영풍은 전체 주주 이익을 위해 전년과 동일한 수준으로 배당이 이뤄지도록 결산 배당을 1주당 1만원으로 올릴 것을 요구했다. 

두 회사는 '시가배당율'을 놓고도 날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영풍은 고려아연의 배당 성향이 높아진 것은 제3자 배정 유상증자, 자사주 맞교환 등으로 배당 대상 주식 수가 급격히 늘었기 때문이라며 "오히려 시가배당률은 감소세"라고 주장했다.

고려아연은 "시가배당률은 당일 주가 변동에 따라 수시로 변동되는 자료로 특정 기업의 주주 환원 수준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지표가 아니"라며 "영풍은 4조원에 가까운 잉여금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2022년 연간 배당금은 170억원대, 배당 성향은 고작 5%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양측이 서로에게 강한 유감을 나타내면서 19일로 예정된 고려아연 주주총회 표 대결은 피할 수 없게 됐다. 

지분율은 우호지분을 포함, 고려아연 33%, 영풍 32%이다. 결국 기관 및 일반 투자자들의 판단에 따라 승패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약 8% 지분을 보유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영풍 강남 사옥. 사진=영풍
영풍 강남 사옥. 사진=영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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