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 어려워 조현병 방치"... 환자 인권이 치료 막는 '모순(矛盾)' [정신건강기획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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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원 어려워 조현병 방치"... 환자 인권이 치료 막는 '모순(矛盾)' [정신건강기획①]
  • 박주연 기자
  • 승인 2024.03.06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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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저널-한국조현병회복협회 공동기획, '환자에게 치료받을 권리를'

"경찰·병원도 개입 꺼려” 비인권적 현실 ‘인권의 역습’
강제입원(비자의입원) 문턱 높인 정신건강복지법
“가족책임 부담 덜고 의료체계 정비 등 국가책임 강화해야”

[편집자 註] 분당 칼부림 사건 등 최근 잇단 범죄사건은 우리 사회에 중증 정신질환자 치료 및 관리보호에 깊은 고민을 안겨줬다. 2017년 5월 개정 시행 중인 정신건강복지법은 인권침해를 줄였지만 더욱 까다로워진 입원절차는 ‘제때 치료받을 권리’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숙제를 남겼다. 이유도 모른 채 감금돼 강제 약물 투여와 무자비한 폭력에 시달리는 영화 속 장면과 이유도 모른 채 흉기에 쓰러진 광장의 장면이 겹치는 시대. NGO저널은 한국조현병회복협회와 공동기획으로 국민 정신건강이 화두로 떠오른 현시점에서 진정한 인권의 의미를 되새기며 중증 정신질환자의 치료받을 권리와 함께 미흡한 제도를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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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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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 1학년 때 정신질환이 발병, 가족에게 폭력을 휘둘러 스무 차례 넘게 병원 입·퇴원을 반복한 32세 아들을 둔 B씨.

“몇 년 전만 해도 서울 모 대형병원에 가도 응급 입원이 가능했는데, 요즘은 대학병원이나 국립정신병원은 아예 응급입원이나 보호입원이 어렵다. 아들이 작년에도 병이 재발해 서울 모 병원에 입원시키려다 안 됐다. 직계가족(보호의무자) 2인의 동의가 있으면 보호 입원이 가능한데도 경찰 없이는 입원시킬 수 없다고 하더라. 나중에 감사 등 문제가 발생하면 병원이 불이익 당할 수 있다며 반드시 경찰이 와야 한다고 이야기 하더라”

# 미국 거주 중 10대에 조현병이 발병한 아들과 딸(현재 30대) 두 자녀를 데리고 13여 년 전 귀국해 치료에 전념하다 세 달 전 증세가 재발한 딸을 병원에 입원시키는 과정에서 낭패를 겪었다는 H씨.

“가족에게 말없이 집을 나가 혼자 살던 딸이 갑자기 전화가 와 울면서 '죽고 싶다'고 말해 철렁한 가슴으로 112 경찰에 전화하여 아이 번호를 가르쳐 주었더니 경찰이 바로 찾았다. 입원시키려고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니, 인권 문제 때문에 나중에 고소당할 수 있다고 못 도와주겠다고 하더라. 아이를 데리고 빨리 집으로 가라는 게 전부였다. 일단 자살은 막았으니 부모가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다. 미국에서도 아이들을 입원시켜봤었는데 그때는 911에 전화한 후 10분 만에 바로 입원시킬 수 있었다”

지난해 8월 경기 분당 서현역에서 14명의 사상자를 낸 ‘묻지마 칼부림’ 가해자 최 모씨가 정신질환 병력으로 치료를 받다 거부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중증 정신질환자의 강제입원 치료를 놓고 또다시 논란이 불거졌다. 올해 초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을 습격한 중학생 A군도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우울증과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등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관심은 더욱 높아졌다.

 

“인권우선” VS “치료우선”  '강제입원' 둘러싼 오랜 갈등

 

강제입원은 정신질환자가 저지르는 강력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이해당사자 간 극한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뜨거운 감자다. 의료계와 환자단체 뿐 아니라 관련 분야 종사자들과 미디어 역시 정신질환자의 인권을 두고 여전히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특히 환자의 인권이 강조되면서 강제입원이란 단어가 주는 부정적 이미지 탓에 터부시하는 분위기마저 생겼다.

하지만 현실은 강제입원이 말처럼 쉽지 않다. 특히 환자의 가족들은 “환자에게 인권이란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다. 인권이란 미명으로 방치하는 게 더 비인권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현행법은 정신질환자의 인권을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강제입원 문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개돼 왔다. 강제입원 요건과 정신질환자의 복지서비스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정신건강 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 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정신건강복지법)’이 2016년 전면개정, 2017년 5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현행 정신건강복지법의 핵심은 ‘강제입원 문턱의 강화’다. 가장 흔한 강제 입원인 보호입원의 경우 기존엔 보호의무자(직계혈족-부모형제·배우자)가 신청하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1명의 입원 소견만으로도 강제 입원이 가능했다. 하지만 개정법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2인, 보호의무자 2인이 모두 동의해야 환자를 입원시킬 수 있다. 전문의 가운데 1명은 국공립이나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정한 정신의료기관에 소속된 의사여야 한다.

환자의 입원 절차뿐 아니라 입원 기간도 제한했다. 환자를 2주 이상 입원시키려면 외부 전문의의 동의를 받도록 '2주 진단 입원' 및 '외부(국공립 및 지정병원) 추가 전문의 진단' 제도를 도입, '입원 적합성 심사위원회'를 신설했다. 입원 후 2주 이내에 의사의 두 번째 진단이 있어야 2주 이상 입원할 수 있도록 했다. 1개월 이상 입원하려면 입원 후 1개월 이내 입원 적합성 심사위원회의 입원 적합 여부 통지가 있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장이 명령하는 행정입원과 경찰 및 의사가 진행하는 응급입원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본인 또는 보호자가 거부하면 사실상 강제할 수 없고, 소송의 가능성도 있어 지자체와 행정기관이 꺼리는 수가 많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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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여론, 사건직후만 호들갑… “가족의 고통 덜어줘야”

 

강제입원을 어렵게 한 효과는 통계수치로도 확인할 수 있다. 국립정신건강센터가 펴낸 ‘국가정신건강현황 보고서 2019’에 따르면 정신의료기관 ‘비자의 입원율(강제입원)’은 2018년 32.1%로 나타났다. 정신건강복지법이 개정되기 이전인 2014년 비자의 입원율이 70.2%를 기록한 것에 비하면 급감한 것이다.

강제입원 요건이 강화되면서 환자의 인권이 강화된 측면이 있지만 문제는 반대로 반드시 입원 치료가 필요한 중증 정신질환자들이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자녀를 둔 H씨는 “(재산 갈등 등) 잘못된 생각으로 다른 가족을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키려는 경우가 다수는 아니지 않나”라며 “몇 안 되는 소수의 사례로 당장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할 우리 아이들이 치료를 못 받고 있다”고 호소했다.

신경정신의학회 백종우 법제이사는 "비자의입원이 줄어든 점은 환자의 자율성을 존중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기도 하지만 입원이 꼭 필요한 이들이 제때 입원을 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며 "비자의입원이 줄어든 만큼 응급입원 등 다른 입원 절차가 크게 늘어난 것도 아니다"라고 했다.

일부 환자 가족들은 현행법이 지나치게 가족들의 판단을 제외시킨다는 불만을 제기하기도 한다. H씨는 “최근 정신질환과 관련해 모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을 봤는데, 아예 부모(직계가족)에 의한 강제입원을 없애는 내용이었다. 지금도 입원이 힘든데 그 법이 통과된다면 부모는 아픈 자식을 방치할 수밖에 없다”며 “자식을 가장 잘 아는 게 부모고, 부모를 잘 아는 게 자식들이다. 다른 병은 가족이 입원시킬 수 있는데 왜 이 병만 가족이 주도해 입원시킬 수 없도록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중증 정신질환자의 범죄사건 때마다 논란이 불거지는 환자의 인권과 치료, 사회구성원의 안전 사이에 균형점을 찾고 또 가족에게만 치료를 부담지우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나영석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총무이사는 “환자의 인권을 보호하면서 사회구성원의 안전도 지키는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데 쉬울 리가 없다. 이를 위해서는 법제도 정비, 인력충원, 시설 투자, 예산확보 등을 해야 한다”며 “지금 시작해도 늦었는데 국회나 보건복지부는 매번 말만 꺼냈다 흐지부지하고 여론과 관심은 사건 직후에만 떠들썩하다 사라져버려 참 안타깝다”고 했다.

의사 출신의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은 “누구든 적절한 시기에 편견과 차별 없이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며 “조기 발견, 조기치료, 적정한 외래와 입원치료, 재활과 사회복귀까지 이르는 일련의 과정에 구멍이 없도록 의료체계를 정비하고 충분한 의료인력을 양성하며 치료병원에 대한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국가책임을 강조했다.

 

※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NGO저널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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