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은 과세권 쟁탈전... 삼성·LG도 '구글세' 불똥 [텍스 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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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붙은 과세권 쟁탈전... 삼성·LG도 '구글세' 불똥 [텍스 워]
  • 최종희, 최유진
  • 승인 2024.02.28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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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기업 등장에 사라진 산업 국경
"기존 체계로는 조세 회피 못 막아" 한목소리
OECD ‘BEPS 프로젝트’...한계 노출
EU, UN 가세하며 자체 해결책 제시
OECD 새 카드조차 상황 반전에는 실패
셈복 복잡해진 ‘과세권 전쟁’ 계속 될 듯
OECD 디지털세의 잔여이익 개념도(사진=OECD 보고서 캡쳐)
OECD 디지털세의 잔여이익 개념도(사진=OECD 보고서 캡쳐)

<편집자 註> 산업의 글로벌화가 새로운 국제조세 체계로의 전환이라는 세계 공통의 과제를 던졌다. 개편 결과에 따라 천문학적 규모의 세수가 왔다 갔다 하다 보니, 논의 과정에서 주도권을 잡으려는 국가 간 물밑 경쟁이 불을 뿜고 있다. 국제 동향을 주도면밀하게 살피고 전략을 세우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것이다.

다국적기업을 겨냥한 국가 간 과세권 쟁탈전은 30년 전부터 시작됐다. 첨예한 이해관계 대립으로 수십년간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고 있다.

분쟁 원인은 산업의 변화 속도를 기존 조세 체계가 뒤쫓지 못한 결과다.

현행법은 회사의 본점 또는 주사무소처럼 물리적 실체(고정 사업장)가 있는 곳에서 세금을 내도록 한다. 하지만 디지털시대에 접어들면서 산업에는 국경이 사라졌다. 고정 사업장이 없이도 다른 국가에서 얼마든지 돈을 벌 수 있게 된 것이다.

기업들은 이 같은 차이를 적극 활용했다. 고정 사업장을 저세율 국가로 옮기는 식으로 절세를 해왔다. 고세율 국가 입장에서는 돈만 벌어가고, 세금은 제세율 국가에 내는 이들 기업이 얄미울 수밖에 없는 셈이다. OECD에 따르면 조세 회피 목적으로 기업 소득이 다른 국가로 이전하는 이른바 ‘이전가격’ 규모가 2014년 기준 최대 2400억 달러에 달한다.

결국 국제사회가 칼을 뽑았다. 기업들의 절세 전략이 세수 감소로 이어진다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 이러한 문제를 없앨 수 있는 다양한 해법이 제시된 배경이다. 하지만 아직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다. 큰 가닥에서는 일치된 의견을 보이지만 각론을 두고는 동상이몽이다. 국가별 이해득실이 다르기 때문이다.

디지털기업이 많은 국가는 세수 손실을 우려한다. 한 개 거점에서 전 세계를 상대로 돈을 벌어 들이는 기업에 대해서는, 어느 나라가 얼마씩 세금을 걷어갈지 주판알만 튕기고 있다. 여기에 국가별 복잡다단한 정치 이슈가 맞물리면서 합의안 도출을 더 어렵게 한다.

본지는 이번 기사를 기점으로 글로벌 과세권 전쟁을 집중 조명한다. 변화하는 국가별 전략을 소개하고, 우리 정부와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심도 깊게 분석, 대응 전략을 제시하고자 한다. 나아가 관련 이해관계자들과 공론의 장도 마련할 계힉이다.

 

“다국적기업 조세 회피 막자” BESP 프로젝트 순항

1990년대 후반 무렵부터 인터넷 사용이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디지털기업이 본격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이들 기업의 성장은 산업의 국경을 허물었다. 인터넷망만 있으면 고정 사업장 없이도 세계를 상대로 돈을 벌어 들이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국제사회가 디지털기업을 주목하게 된 이유다. 기존 조세 체계의 사각지대를 메우는 데 머리를 맞댔다. 초기 논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주도했다.

OECD는 디지털기업의 이전가격 문제를 조세 회피로 규정했다. 국가별 세수 손실을 야기하는 주범으로 지목했다. 이를 막을 구체적 대안도 제시했다. 뱁스(BEPS) 프로젝트다. 2012년 11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에서, 공식 지지를 얻어내며 추진 동력을 확보했다.

야심차게 닻을 올린 BEPS 프로젝트는 순항했다.

OECD는 곧바로 15개로 구성된 BEPS 세부 실행계획을 수립했다. 최종안 2015년 말 발표됐다. 고정 사업장 개념을 확장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디지털 기업이 특정 국가에서 ‘상당한 디지털 존재’를 유지한다면 물리적 실체가 없더라도, 해당 국가에서 ‘세무상 존재’를 가지는 것으로 간주한다는 것이 골자다. 구체적 판단 기준도 마련했다. 현지 언어로 된 웹사이트를 6개월간 지속 유지할 경우 고정 사업장이 있는 것으로 본다.

디지털거래에 원천세를 물리는 방안도 도출했다. 부가세처럼 디지털기업이 해외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서비스 이용금액에 일정 세액을 부과하는 방식이다. 부가가치세와 유사한 셈이다.

이전가격 문제에 대한 직접 해법도 내놨다. 특허를 포함한 무형자산을 활용해 소득이 저세율 국가로 이동할 시, 해당 소득에 대한 국가별 실질 기여도를 계산해 기여도만큼 과세가 가능하도록 했다.

많은 국가가 BEPS 프로젝트에 지지를 보냈다. 영국, 독일, 프랑스는 국제적 세무표준을 강화하기 위한 활동이라고 평가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BEPS 프로젝트 중 일부 실행계획을 국내법에 포함시켰다. 2015년 세법 개정 시, ‘국제거래정보 통합보고서 제출 제도’를 입법화한 것이다.

통합보고서는 다국적기업 그룹 소속 법인 간 거래액을 제출토록 하는 등 조세 회피 차단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사진=미국 워싱턴의 정책연구소인 초당정책센터(Bipartisan Policy Center)가 지난해 말 발표한 디지털서비스세 도입국 현황 지도.
사진=미국 워싱턴의 정책연구소인 초당정책센터(Bipartisan Policy Center)가 지난해 말 발표한 디지털서비스세 도입국 현황 지도.

 

“OECD 못 믿겠다” 반격 나선 디지털서비스세

순항하던 BEPS 프로젝트가 암초를 만났다. 먼저 제동을 건 주체는 유럽연합(EU)이다. 2010년대 후반부터 잡음을 내기 시작했다. 복잡하게 설계된 BEPS 프로젝트 구조를 물고 늘어졌다. 미국을 견제하기 위한 취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회계 전문가들은 미국 주도로 흘러가는 OECD 논의에 불참하기 위해 EU가 독자 행보를 선택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EU는 디지털서비스세(DST)라는 새 제도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이 제도는 전 세계를 무대로 온라인 광고, 디지털 플랫폼, 데이터 거래 사업을 진행하는 다국적기업을 정조준했다. 부가가치세와 비슷하게 거래가 발생할 때마다 일정 세율을 곱해 과세하는 방식이다. 통일된 세율은 정해지지 않았다. 현재 국가별도 적게는 3%, 많게는 10%가 넘는 세율을 적용하고 있다.

세금 부과와 계산이 상대적으로 간편하다 보니, BEPS 프로젝트보다 속도감 있게 저변을 넓혀갔다. 2018년 후반부터 여러 국가가 DST 도입에 나섰다. 2019년 프랑스가 첫 테입을 끊었다. 이어 스페인, 이탈리아 등 주요 유럽 국가들이 차례로 DST 전선에 합류했다. 영국, 인도, 터키와 같은 EU가 아닌 국가들도 동참했다. 여기에 국제연합(UN)마저 DST를 지지하면서, 탄력을 받게 됐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OECD도 반격에 나섰다. 아이러니한 점은 BEPS 프로젝트 한계점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OECD는 2021년 10월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BEPS 프로젝트와 현실 간 격차가 있음을 밝혔다.

대신 이 같은 격차를 메울 방안으로 디지털세와 글로벌 최저한세(GMT) 카드를 제시했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두 제도를 설계해왔다. 2021년 10월에는 136개 국가의 합의까지 끌어내며 주목을 받았다. 미국이 키를 잡고 세 확장을 주도했다. DST 도입 시 가장 크게 피해를 볼 국가가 미국이기 때문이다.

실제 DST는 미국 공룡 기업을 겨냥했다는 의미로 구글세라고 불리기도 했다. 구글, 아마존, 메타를 비롯한 거대 디지털기업 대부분은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다. DST가 안착하면 미국은 상당수 세수를 다른 국가들과 나눠가져야 하는 셈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은 노골적으로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프랑스가 DST를 도입했다는 이유로 2019년 말 보복관세 조치를 단행했다. 비슷한 시기에 열린 OECD 회의에서는 디지털세 대상에 제조업을 추가하자고 제안하는 등 자국 기업만 피해를 볼 수 없다는 식으로 대응했다.

한편 GMT는 직전 4개 사업연도 중 2개 연도 이상의 연결재무제표상 매출이 7억500만 유로 이상인 글로벌 다국적기업이 어느 국가에 법인을 세우든 최소 15%의 세율을 적용,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다. 실효세율이 8%일 경우, 15%에 미치지 못하는 7% 상당 세금을 추가로 계산해 해당 법인의 모회사가 속한 국가가 걷어가는 식이다.

디지털세는 이름만 DST와 유사할 뿐 계산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두 단계 구조다. 먼저 기업별로 적정 세금을 구한다. 100원을 벌었다면 20원은 세금으로 내야 한다는 논리다. 만약 기업이 20원에 못 미치는 10원만 납부하게 됐다면, 모자란 10원을 잔여이익으로 간주한다.

잔여이익은 다시 계산대에 오른다. 잔여이익의 25%를 소득 발생 국가들이 기여도에 따라 나눠 갖는다. 기여도 산정 기준은 제각각이다. 주로 매출 규모, 서비스 이용자 수 등을 잣대로 삼는다. 에이비앤비와 같은 플랫폼 기업은 플랫폼 사용 빈도를 따진다.

우리나라는 GMT 열차에 탑승했다. 올해부터 GMT 규정을 적용받는다. 새 제도에 따른 삼성과 SK, 현대자동차, LG 등 국내 대기업들 영향이 내년 상반기 중 나올 예정이다. 다만 당분간 디지털세를 도입할 가능성은 없다. 계산 방식이 복잡하다는 지적을 받으면서, 디지털세 자체가 아직 초안 상태로 머물러 있다.
 

혼전 양상 치닫는 과세권 쟁탈전 계속될 전망

BEPS 프로젝트를 포함해 국제 조세 개편에 칼자루를 줘왔던 OECD의 리더십이 흔들린다. 디지털세 논의가 접점을 찾지 못하는 가운데, GMT마저 DST 전선에 밀리고 있다.

본지 취재결과, 지난해 말 기준 자국법을 개정해 DST를 입법화 국가 수는 29곳으로 집계됐다. 반면, GMT를 자국법에 받아들인 나라 수는 21곳에 불과하다. OECD 전선에 헤게모니를 쥔 미국조차 공화당의 반대에 부딪혀 법안 통과를 장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UN에서도 OECD에 견제구를 던졌다. 수요와 공급 논리에 따라, 서비스나 재화 생산국은 물론 소비국에서도 과세권을 갖도록 해야 한다며, OECD안이 지나치게 공급에만 치중해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될 전망이다. 과세권을 둘러싼 국가 간 첨예한 이해관계가 극적으로 좁혀질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조세 동향을 예의주시하며 우리나라와 기업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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