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조 1000만명' 시대 눈앞...'산업' 육성 위한 제도 뒷받침 절실 [시경p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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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조 1000만명' 시대 눈앞...'산업' 육성 위한 제도 뒷받침 절실 [시경pick]
  • 최종희 , 최유진
  • 승인 2024.02.20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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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가격’ 힘입어...가입자 1000만 시대 성큼
상조회사 선택 시 불확실성 여전... 관련 법제 미비
"가입자 역대 최대 늘어도 적자"...회계기준, 현실과 괴리
보험업 참조, 회계상 비교가능성 높여야... 제도 보완 시급
사진=보람상조 홈페이지 캡쳐
사진=보람상조 홈페이지 캡쳐

“뭘 믿고 10년, 20년씩 돈을 부어야 하나.”

상조서비스 가입 시 누구나 하게 되는 고민이다. 상조서비스가 장례문화로 자리 잡았지만, 믿을 만한 상조회사 고르기가 여전히 어렵다는 방증이다.

상조회사 간 비교가능성을 높일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착한 가격’으로 뜬 상조... ‘가입자 1000만’ 시간문제

상조산업이 호황기를 누리고 있다. 지난 5년(2017~2022년)간 연평균 10%대 성장률을 기록할 정도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상조업계는 지난해 하반기 기준 가입자 757만명을 유치했다. 선수금은 7조8924억원에 달한다. 현재의 성장세를 감안하면 1000만 가입자 달성도 시간문제다. 선수금은 가입자들이 매달 납부하는 부금의 총액이다.

이른바 ‘착한 가격’ 정책이 소비자 마음을 제대로 파고들었다는 평가다.

상조서비스의 기본 구조는 간단하다. 부금을 완납한 고객이 장례를 치룰 때, 장례지도사를 파견해주고 수의를 지급하는 등 약정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이때 물가 상승에 따른 서비스 가격 변동을 반영하지 않는다. 부금 납입 시점부터 장례를 치르기까지 10년, 20년이 걸리더라도, 계약 당시 금액만 내면 된다.

예를 들어, 지금 시점에서 500만원 상당 상조상품에 가입할 경우, 같은 조건 상품의 20년 뒤 가격은 훨씬 높아질 수밖에 없지만, 이러한 가치 변동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은행 예금 이자율이 물가상승률을 밑돈다면 상조에 돈을 붓는 게 이득인 셈이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상조회사는 매출 대부분을 차지하는 주력 사업에서 마진을 많이 남기기 어렵다. 매출에서 상조서비스 원가를 빼고 나면 이익률 20%를 맞추기도 버겁다.

간신히 20%를 남겨도 가입자 모집수당(영업수당)과 부금 납입액 보전을 위한 보험료, 광고선전비를 부담해야 한다. 사무실 운영비, 내부 직원 인건비와 같은 고정비까지 비용으로 떨어내고 나면, 영업이익을 내기 힘든 구조라는 게 업계 평가다.

결국 매달 쌓이는 부금을 투자자산으로 굴려 수익을 만들어내야 하는 숙명에 놓인 셈이다.
 

“신규가입 0건에도 실적은 흑자”... 현실과 괴리 큰 재무제표

하지만 여전히 상조서비스에 지갑을 열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장기간 돈을 부어야 하는데, 믿을 만한 곳을 찾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혹여나 계약한 상조회사가 문을 닫게 되면 오랫 동안 부은 돈이 날아갈까 우려하기도 한다.

상조회사 실질을 정확히 보여주는 정보가 부족하다는 것이 이러한 불확실성을 키웠다.

실제 상조회사가 공시하는 재무제표조차 혼란을 잠재우지 못한다. 불완전한 회계기준 때문이다.

상조회사 재무제표 곳곳에는 착시 현상이 숨어있다. 사업 실적과 무관하게 금리가 오르고 내릴 때마다 재무제표를 구성하는 자산, 자본이 출렁인다. 금리 변동에 취약한 셈이다.

상조회사는 주력 사업에서 마진을 많이 남기기 어렵다 보니 필연적으로 금리 변동에 민감한 금융자산을 많이 쥐고 있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부채 대부분을 차지하는 선수금이 금리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 때문에, 금리 상승으로 자산 크기가 줄어들게 되면, 자본이 덩달아 축소될 수밖에 없다. 이는 자산이 자본과 부채를 더한 값과 늘 같도록 설계된 회계 구조 때문이다. 부채가 고정돼 있다 보니, 자산이 변동하는 만큼 자본이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금리 상승이 급격할 경우, 부실기업을 뜻하는 자본잠식 우려까지 발생한다. 선수금은 1년 갚아야 할 유동부채가 아니어서 자본잠식과의 연결성이 크지 않음에도 이 같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금리 하락기에는 늘어난 자산 크기만큼 자본이 과대 포장되기도 한다.

손익 구조도 상조산업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가입자 한명을 유치해도 손익 인식 시점은 한참 뒤로 밀린다. 계약시점이 아닌 상조서비스 제공시점에 수익, 비용을 일괄 반영하도록 한 회계기준 때문이다. 일례로 20년짜리 계약이 체결됐다고 하면, 가입자가 도중에 상조서비스를 신청하지 않는 한 20년 후에나 손익이 재무제표에 잡힌다.

계약기간이 보통 10년을 넘어가는 상조상품 특성을 감안하면 현실과는 괴리가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익, 비용을 계약기간 동안 평탄화해 인식하는 발생주의 회계 원칙과도 맞지않다.

이러한 비현실적 회계기준 탓에 착시 현상이 또 일어난다. 신규 가입자를 역대 최대로 유치하는 성과를 내도, 그해 장례 건수가 적을 경우, 적자가 날 수 있다. 가입자 유치 실적이 저조해도 장례 건수만 많으면 흑자를 내는 것도 가능하다. 시장에 잘못된 정보를 주는 셈이다.

사진=프리드라이프 홈페이지 캡쳐
사진=프리드라이프 홈페이지 캡쳐

 

보험업 참조, 회계상 비교가능성 높여야

상조업계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는 회계기준을 마련해달라는 요구가 거세다. 정부도 이러한 인식에 공감, 상조산업 특성에 맞는 회계지표 개발에 나섰다. 기획재정부가 주도권을 쥐고 올해 초 관련 연구용역에 착수했다.

상조 전문가들은 업의 특성이 유사한 보험업 회계기준을 참고해야 한다고 진단한다.

보험업계 역시 과거에는 불완전한 회계기준 탓에 골머리를 앓아왔다. 실제 들어오고 나간 현금을 기준으로 수익과 비용을 인식하도록 하다 보니, 가입자를 많이 유치한 해일수록 회계상 적자가 발생했다. 보험업 특성상 수익을 뜻하는 보험료는 계약 기간에 걸쳐 매년 일정한 가운데, 비용 발생 요인은 대부분 계약 초기에 몰려있기 때문이다. 또 상조업계처럼 금리 상승기에는 자본이 줄어드는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이에 따라 보험업계는 지난해부터 새 국제회계기준(IFRS17)을 도입했다. IFRS17 적용 후 그동안 불거졌던 문제 대부분이 해소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부채를 자산과 동일하게 시가 평가하면서, 금리 변동에 따라 자본이 요동 칠 우려를 크게 줄였다. 부채 중에서는 회사가 미리 계산한 마진을 따로 떼 수익으로 인식할 수 있는 토대도 마련했다.

보험업 기준을 상조업계에 대입할 경우, 비슷한 긍정 효과가 나타난다. 선수금만 해도 전체 금액에서 마진 부분만 별도 구분해 계약 기간에 걸쳐 수익으로 인식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금리 영향을 덜 받게 됨에 따라 재무적 안전성이 높아질 전망이다.

마진의 규모와 증감 여부는 재무제표에 따로 기록된다. 이렇게 되면 상조회사 간 비교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또 10년, 20년씩 뒤로 밀리던 수익, 비용 인식 시점이 앞당겨져 회사 실적이 실질과 가까워진다.

현재 상조회사는 상조상품 설계 시 미래 수익과 비용을 예측해 나온 결과값에 마진을 더해 최종 상품가를 정한다. 상품가 전체를 선수금으로 잡고 있다.

이 같은 제도 개선 효과는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재무제표상 마진 구조만 살펴도 이 회사가 얼마나 양질의 상품을 팔고 있는지, 신규 가입자가 안정적으로 늘고 있는지 한눈에 볼 수 있다. 상조 가입을 망설이는 소비자에게 확실한 판단 근거가 제공되는 것이다.

상조업계 관계자는 “선수금 50%를 금융기관에 예치하는 선불식 상조서비스와 달리, 후불제 상조는 소비자 보호체계가 미흡한 실정”이라며 “부족한 부분은 계속 채워나가되, 상조서비스가 이미 장례문화로 자리잡은 만큼 진흥의 관점에서 발전 방안이 논의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보험료를 수익으로 잡는 보험사와 달리, 상조사는 부금을 부채인 선수금으로 계상하다 보니, 재무구조가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며 “상조산업 특성을 반영한 회계지표를 개발, 개선해나가겠다”고 밝혔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상조산업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고, 산업 진흥을 위한 다방면의 정책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며 “이러한 성장 과정에서 소비자 불편이나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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