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S 사태로 발등에 불 떨어진 은행... '불완전판매' 입증이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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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S 사태로 발등에 불 떨어진 은행... '불완전판매' 입증이 관건
  • 유경표 기자
  • 승인 2024.01.30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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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위험 상품 ELS... 은행의 판매과실이 쟁점
ELS '반토막'에 투자자들 집단행동에 나서
은행 "판매절차 문제 없었다" 배상에 난색
수습 가능성... 금감원 결정에 쏠리는 이목
불완전판매 결론 따라 책임소재 달라질 듯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가계대출 잔액은 10일 현재 679조 8,893억원으로 집계됐다. 7월 말(679조 2,208억원)과 비교해 이달 들어 열흘 만에 6,685억원 또 늘어난 수치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편집자주] 수조원대 손실을 예고하고 있는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만기가 도래하고 있다. ‘시한폭탄’을 떠안게 된 가입자들의 속은 타들어갈 지경이다. 피해자들로부터 은행의 ‘불완전 판매’ 의혹이 속속 드러나면서, 금융당국도 판매처인 5대(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은행과 증권사 등에 대한 전수조사에 나서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홍콩H지수 ELS 누적 판매액은 총 19조 3000억원이다. 이 중 은행이 판매한 액수는 15조 9000억원에 달한다. 현재 해당 상품의 손실률은 56%를 넘어선 상황. 올해에만 15조 4000억원의 만기가 돌아온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대다수 피해자들은 ELS 가입 당시 은행 측이 고위험에 따른 원금손실 가능성에 대해 제대로 고지하지 않았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이들이 그나마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있는 대목은 구체적인 손실보상 방안 마련이라고 할 수 있다. <시장경제>는 과거 사례를 통해 이번 홍콩 ELS 사태의 손실보상 가능성을 짚어봤다. 
 

ELS가 뭐길래... "원금손실 가능성 있는 고위험 상품"

금융권을 긴장시키고 있는 이번 홍콩발(發) ELS 사태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선 ELS가 어떤 상품인지를 알 필요가 있다. ELS는 ‘파생결합 금융투자상품’의 하나로, 초고위험 상품으로 분류된다. 만기는 3년 이하다. 

예를 들어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삼아 연계되도록 하고, 특정 조건을 충족하면 투자 손익이 결정된다. 통상적으로 6개월마다 조기상환 기회가 부여되지만 만기 시점에서 홍콩H지수가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그만큼의 원금 손실이 발생하게 된다. 

ELS의 종류는 ‘녹인형(knock-in)’과 노녹인형(no knock-in)‘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녹인형은 계약기간 중 기초자산 지수가 가입 당시보다 절반 이하로 한 번이라도 떨어지면 원금손실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만기까지 지수가 가입 당시의 70% 이상 회복하지 못하면 원금을 보전하기 어렵다. 반면, 노녹인형은 만기 때 지수가 가입 당시의 65% 수준 이상일 경우, 원금과 이자 모두 받을 수 있다. 

금감원 자료에 따르면 홍콩H지수 ELS 전체 판매 잔액 중 녹인형은 10조 8000억원으로 55.8%, 노녹인형은 8조5000억원으로 44.2%를 차지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큰 녹인형이 노녹인형에 비해 11.6%p 많이 판매됐다. 현재 홍콩H지수가 가입 당시인 2021년 대비 50% 이하로 떨어졌기 때문에 사실상 두 유형 모두 손실을 피하기 어렵다. 

이러한 ELS 상품의 맹점은 ’하이 리스크, 로우 리턴‘이다. 이자는 예금보다 높은 수준이긴 하지만, 변동성이 큰 지수와 연계되르모 언제든 원금손실 가능성이 상존한다. 

시중은행이 상품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직원들에게까지 ELS 판매를 맡겼다는 의혹도 일고 있다.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이번 사태를 키운 주요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각 은행들이 내부적으로 ELS 판매 실적을 KPI(핵심성과지표) 가산점에 반영했는지도 관건이다. ’실적 채우기‘에 급급한 나머지 고객에게 상품의 위험성을 충분히 고지하지 않고, 가입자 유치에만 몰두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길이 쏠리는 이유다. 

23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금융소비자 보호에 취약한 한국금융의 과제와 대안' 토론회 전경. 사진=시장경제DB
23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금융소비자 보호에 취약한 한국금융의 과제와 대안' 토론회 전경. 사진=시장경제DB

 

ELS피해자모임 "위험고지 없었다"... 불완전판매 주장

ELS 원금손실이 가시권에 들어서자 피해자들은 집단행동 및 법적 대응에 돌입했다. ELS 손실규모가 올해 상반기에만 6조원대에 이를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면서, 책임소재를 두고 판매처인 은행과 피해자 단체 간 공방은 불가피한 수순으로 접어들고 있다. 

23일 양정숙 의원(무소속) 주최로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금융소비자 보호에 취약한 한국금융의 과제와 대안(ELS 사태 중심으로) 토론회’에서 ‘ELS피해자모임’은 은행 측의 불완전판매를 입증할 자료라며 녹취록과 함께 여러 피해사례를 공개했다. 

투자자 A씨는 “가족 3명이 모은 재산 10억원이 18개로 나뉘어 ELS에 가입돼 있다”며 “60대 초반인 어머니가 2017년 정기예금을 들기 위해 은행을 방문했다가 직원으로부터 대체상품이라며 ELS를 추천받아 가입했고, 2021년에 재가입할 때는 위험성 고지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은행 담당자에게 ‘어머니가 이 상품에 가입하기 적합해 보였느냐고 묻자, 10분간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며 “선진국에선 은행이 ELS를 판매할 수 없다. 우리나라 제1금융권이란 은행이 서민에게 사기를 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투자자 B씨도 “고등학생 때 어머니가 제 명의로 ELS를 가입했는데, 은행에선 처음부터 상품 설명서 등을 일절 주지 않았고 이번 사태 터지고 나서야 받을 수 있었다”며 “나중에 보니 고등학생인 제가 ’공격투자형 100점‘으로 조작돼 있었는데 어머니의 투자성향보다 점수가 높았다”고 울분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은행 담당자는 어머니인척 보험사에 전화해 생명보험을 해지하고 ELS에 가입시켰다”며 “당시 담당자는 ’자신에게 이익이 하나도 안 되는데 부모님을 도와주는 것이라면서 가족의 전재산을 ELS에 넣도록 했다”고 덧붙였다. 

투자자 C씨 역시 “평소 성향이 원금손실을 무서워하는 탓에 주식조차 안하는데, 은행으로부터 절대 안전한 상품이고 손실날 위험이 없다는 권유에 ELS에 가입하게 됐다”며 “재가입시에도 위험성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고 전했다. 

그는 “당시 심한 백내장으로 일상적인 읽기·쓰기가 어려워 계약서를 작성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는데도 단 1분만에 가입 서류가 작성됐다”며 “은행 측은 이미 서류를 다 작성해놓고 있었는데 이는 불법대필 작성”이라고 성토했다. 

길성주 ELS피해자모임 위원장은 “우리는 투자자가 아니라, 안전과 신뢰를 바탕으로 은행을 이용한 예금자”라며 “은행은 불확실한 상품에 대해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면 안됨에도 오히려 안전하다며 주구장창 ELS를 팔았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저도 안전하고 손실난 적이 없다는 말에 신탁으로 생각하고 가입하게 됐다. 적금 대체상품이라는 설명이 끝이었다”며 “재가입자는 은행이 먹기 쉬운 먹잇감이었다. 시작부터 끝까지 적법하게 판매되지 않은 것”고 부연했다. 
 

DLF 사태 피해자들이 시위하고 있는 모습. 사진=이기륭 기자
2019년경 DLF 사태 피해자들이 시위하고 있는 모습. 사진=시장경제DB

 

다시 회자되는 DLF·키코 사태... 어떻게 배상했나

시중은행의 ELS 판매 과정에 위법성이 드러날 경우, 대대적인 보상방안 논의가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이번 ELS 사태에서 손실이 확정된 상품은 2021년 1월에 판매됐는데,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은 그 이후인 같은 해 3월 25일 시행됐다는 점에서 소급적용이 어려울 것이란 관측도 있다. 

ELS피해자모임측은 이번 ELS 사태의 발생 원인으로 ▲은행의 탐욕·무능 ▲고난도 금융상품 판매 과정의 위법성 ▲금융당국의 관리 미흡 등을 꼽고 있다. 이에 대한 근거로는 예금자 보호 및 신용질서를 유지하는 내용의 은행법 1조를 든다. 예금자 보호가 최우선 목적인 은행이 초고위험 금융투자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 올바른지 위법성을 따져봐야 한다는 얘기다. 

금소법에서 규정하는 6대 원칙에 따라 은행들이 고위험·고난도 금융투자상품 판매 과정에서 투자자 보호 장치가 실질적으로 작동되지 않았다는 비판도 잇따르고 있다. 금소법에서 정하는 6대 원칙은 ▲적합성 ▲적정성 ▲설명의무 ▲불공정 영업행위 금지 ▲부당권유행위 금지 ▲허위과장광고 금지 등이다. 

이와 관련해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상임대표는 홍콩 ELS 판매 과정에서 은행이 ‘안전성’만을 강조했을 뿐, 정작 파생금융상품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했다는 점을 문제로 진단했다. 또 일반투자자에게 적합하지 않을 경우 투자권유를 하지 말아야 하는데도 되레 판매를 확대하는 등 은행 측의 무리한 영업확대 방침도 지적했다. 

이 상임대표는 “ELS 판매가 확대된 배경에는 각 은행들의 안전불감증이 자리한다”며 “ELS에 대한 은행별·가입자별 전수조사를 통해 배상비율을 결정할 필요가 있다. 과거보다 진일보한 배상 산정 기준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배상 방안 시나리오와 관련해선 과거 사례를 참고할 만 하다. 대표적으로는 2008년 키코(KIKO) 사태와 2019년 DLF(파생결합펀드) 사태가 있다. 모두 은행에서 촉발된 ‘금융참사’라는 점이 공통된다. 

키코 사태 당시에는 738개사가 피해를 입었고, 손실액은 약 3조 2247억원에 달했다. DLF 경우, 총 판매액 7950억원 중 손실액은 33% 수준인 2622억원이었다. 

배상과 관련해선 두 사례가 차이를 보인다. 키코와 관련해 당시 금융당국은 해당 상품을 판매한 은행 6곳에 총 255억원을 배상토록 했다. 배상비율은 15~41% 수준이었다. DLF의 경우에는 최대 80%까지 배상이 인정됐다.  
 

오는 4월부터 금감원이 은행의 '꺾기 과태료'를 대폭 인상할 방침이다. 사진=금융감독원
오는 4월부터 금감원이 은행의 '꺾기 과태료'를 대폭 인상할 방침이다. 사진=금융감독원

 

ELS 배상 시나리오는?... '불완전판매' 입증놓고 의견 갈려

금융정의연대 측은 DLF 배상 전례를 감안해 최대 80% 이상 배상비율이 정해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배상이 이뤄질 경우 금감원이 투자자의 자기책임 원칙 20%에 따라 분쟁조정에서 최대 80%에서 최저 40%로 배상을 결정할 필요가 있을 것이란 전망도 함께 내놓고 있다. 

이러한 시나리오가 성립되기 위해선 ELS 사태와 관련한 시중은행들의 금감원 조사 결과가 중요 변수이다. 해당 조사에 따라 ▲ELS 판매한도 관리 미흡 ▲KPI상 고위험·고난도 ELS 판매 드라이브 정책 ▲계약 서류 미보관 등은 은행 본점 차원의 부실 책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ELS피해자모임 측에선 금융당국이나 은행권 등에서 나오고 있는 배상안에 대해 인정하지 않고 있다. 피해자모임 측 관계자는 "ELS 판매 과정 자체가 '사기'에 가깝기 때문에 해당 상품의 가입은 '무효'로 봐야 한다"며 "자세한 설명 없이 예금인줄 알고 가입한 피해자들에게 온전한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금융권 일각에선 전혀 다른 견해를 내놓고 있다. ELS 계약 과정에서 각 계약서에 자필서명을 받았고, 녹취도 돼 있는 만큼 ‘불완전판매’ 여부를 입증하기에는 무리가 따를 것이란 해석이다. 다시 말해 ‘불완전판매’를 입증하지 못하면 법리적으로 은행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얘기다. 

특히 ELS 재가입자에 대해선 한층 배상이 어려워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번 홍콩 ELS 가입자 중 재가입자 비율은 90%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들은 “재가입 당시 은행 측에서 위험성에 대한 고지를 하지 않았다”는 입장이지만, 실제로 원금손실 가능성에 대해 사전에 전혀 인지하지 못했는지 입증할 방법이 현실적으로 없다는 게 문제로 거론된다. 

피해자측에서 일부 ‘불완전판매’를 입증했다고 해도 이를 판매 과정 전체의 문제로 확대해 해석할 수 있는지도 논란의 불씨를 남길 것으로 보인다. 

ELS를 판매한 은행 측이 ‘불완전판매’의 책임을 직원에게 전가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피해자에게 은행 측이 선 배상한 뒤 판매 직원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방식을 취하는 시나리오다. 우리 민법에서는 직원이 업무 실수로 회사에 피해를 끼쳤을 때 해당 직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민법 390조는 “근로자는 근로계약서에 기재된 업무를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성실하게 제공해야 하는데 근로자의 귀책사유로 근로제공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게 되면,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거나 근로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적시하고 있다.  

이 경우 은행 입장에선 불완전판매의 책임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면서도 완만한 보상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이 역시 ‘불완전판매’의 입증 책임을 투자자가 짊어져야 한다는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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