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코리아 부산공장, 글로벌 생산기지냐 위탁 생산처냐 '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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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노코리아 부산공장, 글로벌 생산기지냐 위탁 생산처냐 '기로'
  • 노경민 기자
  • 승인 2024.01.0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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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공장 23년간 완성차 초기 품질 분야 선도
르노그룹 세계 20개 공장 중 생산 품질 1~2위
르노코리아 부산공장서 폴스타 4 생산 합의
생산량 2017년 26만대서 2021년 11만대 급감
日 닛산 '로그' 물량 끊기면서 침체기 진입
자체 차량 생산 줄면서 '위탁 생산처' 우려
부산 강서구 소재 르노코리아자동차 부산공장. 사진=연합뉴스
부산 강서구 소재 르노코리아자동차 부산공장. 사진=연합뉴스

 

르노코리아자동차 부산공장이 전기차 전환 시대를 맞아 글로벌 브랜드의 핵심 생산 시설을 꿈꾸고 있다. 23년간 자동차 생산 분야에서 국내 완성차 품질 1위 등 우수한 성과와 글로벌 경쟁력을 검증받아 온 데다 수출에 용이한 부산항이 인접하다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연간 최대 30만대를 생산할 수 있는 르노코리아자동차 부산공장은 약 2000명의 직원들이 근무 중이다. 1997년 완공된 부산공장은 르노그룹의 세계 20개 자동차 공장 중 생산 차량 100대당 불량 수, 공장 출하 차량 1대당 불량 수 등 주요 생산품질 관리 지표에서 그룹 내 1~2위 자리를 놓고 다툴 만큼, 국내 완성차 초기 품질 분야를 선도하며 최고 품질의 경쟁력을 인정받았다.

르노코리아 부산공장은 미국, 유럽, 남미 등 주요 지역 자동차 업체의 생산성을 비교 분석한 보고서인 하버리포트(Harbour Report) 평가에서도 2016년과 2018년에 각각 전 세계 공장 중 8위와 6위에 오르는 등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하버리포트는 글로벌 컨설팅 회사인 올리버와이먼이 한 해 동안 자동차 공장의 생산성 지표를 비교 분석해 발표하는 보고서로 업계의 표준으로 꼽힌다.

다만, 일각에서는 자체 생산 차량이 줄면서 로느코리아 부산공장이 자칫 글로벌 자동차사의 위탁 생산처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점차 신차 생산이 줄면서 부산공장 가동률이 낮아지고 있고, 중국 지리그룹의 지분이 높아지면서 르노코리아가 자연스럽게 한국 시장에서 철수하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도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르노코리아 부산공장, 세계 최고 품질 경쟁력 인정

르노코리아 부산공장은 최근, 2025년 하반기부터 스웨덴 전기차 브랜드 폴스타의 북미·한국 판매용 순수 전기차 '폴스타 4'를 생산하기로 합의했다. 풀스타가 국내에서 차량을 생산하기로 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자(OEM) 방식으로 생산된다. 앞서 언급한 대로, 23년간 자동차 생산 분야에서 국내 완성차 품질 1위를 지킨 강점도 배경이 됐다.

이번 풀스타 4 생산으로 르노코리아자동차는 '글로벌 동맹'을 통한 '위탁 생산', '기술 협력'으로 글로벌 수출 허브 역할을 확대하는 것은 물론 경쟁력 확보를 꾀할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업계는 르노코리아가 폴스타 4 생산을 통해 단기적으로는 공장 가동률을 높이고, 생산 고정비용을 절감하며, 장기적으로는 자체 전기차 전략과 관련한 노하우를 쌓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스테판 드블레즈 르노코리아 CEO는 폴스타 4 생산과 관련 "폴스타 4는 부산공장에서 생산하는 첫 번째 SUV 전기차로, 르노코리아의 새로운 출범과 미래 비전을 상징하는 모델이 될 것이다. 신뢰를 보내 준 폴스타 브랜드에 감사하다"며 "우리의 든든한 주주인 르노그룹과 지리그룹의 지원 아래 르노코리아는 가까운 미래에 더 많은 비즈니스 기회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다만, 문제는 르노의 신차 부재로 부산공장이 위탁 생산처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는 점이다.

르노코리아는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약 5년간 닛산의 북미 수출용 로그를 부산공장에서 위탁 생산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닛산은 2020년부터 후속 물량을 주지 않았고, 신차 부재 속에 부산공장은 침체기를 겪고 있다. 부산공장의 2017년 당시 생산 물량은 26만4037대로 최대 생산 가능 물량 80%를 웃돌았지만, 2021년 11만대까지 생산량이 하락했다. 그러다 XM3의 수출 확대에 힘입어 생산량이 소폭 반등했음에도 지난해 생산 물량은 16만대 수준에 그쳤다.

이런 상황에 부산공장 내 근로자들 사이에서는 고용 불안감마저 커졌다. 르노코리아 관계자에 따르면, 올해 부산공장은 가동률이 하락세를 이어가면서 근무일수도 계속 줄었다. 

 

르노 신차 부재에 공장 가동률↓... 위탁 생산처 전락 우려

업계 한 관계자는 "부산공장 직원들은 보통 한 달에 20~22일을 근무했지만, 올해 8월 기준 생산·판매 계획상 근무일수가 겨우 10여 일에 그친 것으로 안다"며 "휴가철임을 감안하더라도 휴무만 8일이다. 이는 부산공장 가동률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항저우만 공장에서 생산 중인 폴스타 4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중국 항저우만 공장에서 생산 중인 폴스타 4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중국 지리그룹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폴스타 4 생산을 무작정 반기기도 무리가 있다. 부산공장이 이례적으로 수입 브랜드 차량을 생산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지리 그룹과 르노코리아의 지분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중국 지리홀딩스(지리자동차)는 지난해 르노코리아 지분 34.02%를 인수하면서 르노코리아의 2대 주주에 올랐다. 폴스타는 지리그룹 산하의 스웨덴 프리미엄 전기차 브랜드다. 르노코리아 입장에서는 사실상 계열사 제품을 생산해, 부산공장 가동을 이어갈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한 셈으로 지리그룹과 르노그룹 모두 윈윈하는 전략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XM3 이후 르노그룹에서 배정받은 후속 생산 물량이 없는 상황에서 폴스타 생산이 주력이 된다면 외부 업체의 하청 생산기지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이다.

이 관계자는 "르노코리아가 부산공장 가동을 멈출 수 없는 상황에서 근로자들의 생계나 지역경제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가장 탁월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다"면서도 "다만 르노그룹이 최대 주주 자리를 지리그룹에 빼앗기게 되는 상황이 우려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판매 부진에 빠진 르노코리아가 자연스럽게 지리에 지분을 넘겨 한국 시장에서 철수하면서 지리그룹이 최대 주주를 넘겨받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그렇게 되면 지리그룹이 자연스레 중국산 차량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지우고 한국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내년부터 '오로라 프로젝트' 가동... '위탁 생산처' 벗어날까 

결국 르노는 외부 업체의 하청 생산기지로 전락하는 상황을 막으려면 신차 출시가 시급한 상황이다. 르노코리아는 '오로라 프로젝트'를 통해 신차를 선보이면서 이를 타개한다는 계획이다. 우선 2024년 하반기 출시를 목표로 하이브리드(HEV) 중형 SUV(오로라 1)를, 2026년 초를 목표로 중대형 세단(오로라 2)을 선보인다는 방침이다. 2026년 말에서 2027년 초에는 순수 전기차 오로라 3 양산에 들어갈 계획이다. 

이들 모두 부산공장에서 생산할 예정이지만, 오로라 프로젝트가 얼마나 성공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생산량을 예측하기는 무리가 있다. 결국 자생능력을 검증하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르노코리아 관계자는 "위탁이라고 표현하기보다는 협력이라는 단어가 적절하지 않나 싶다"면서 "부산공장과 관련 회사의 근로자들을 생각하면 어떤 방식으로든 공장을 가동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번 폴스타 4 생산과 관련 "하이브리드 모델 오로라 1은 볼보·폴스타에 적용하는 플랫폼 라이센스를 구매해, 르노코리아가 전체 개발 과정을 맡아 제작한다. 이들의 기술력을 가져와 한국 소비자 맞춤형으로 자체적으로 적용시켜 생산하는 것"이라며 "폴스타 4 생산도 이런 과정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를 통해 신차 개발 기간도 1~2년 단축시킬 수 있다"고 부연했다.

르노코리아는 내수가 반토막 이상 줄며 국내 완성차 5개 업체 중 최하위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 지난해 완성차 회사 중 유일하게 수출 물량까지 줄면서 진퇴양난에 빠졌다. 부산공장이 더 이상 '수출을 위한 협력 공장' 역할에 머물지 않으려면 협력을 통한 뚜렷한 성과를 내야 하는 상황이지만, 신차를 생산해 판매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기 떄문에 타개책을 찾기도 쉽지 않다. 르노코리아가 언제쯤 최악의 실적을 딛고 다시 반등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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