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이격거리 완화?... 번지수 잘못 찾은 '알뜰주유소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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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이격거리 완화?... 번지수 잘못 찾은 '알뜰주유소 정책'
  • 배소라 기자
  • 승인 2022.03.01 2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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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값 비싼 수도권엔 거의 없는 알뜰주유소
이격거리 제한 완화 필요성 '물음표'
정작 알뜰주유소 전환 원하는 곳은 지방
세금 감면 혜택 확대... '표심잡기용'에 불과
사진=시장경제DB
사진=시장경제DB

정부가 석유제품 물가 안정화를 위해 도심 알뜰주유소 이격거리를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현행 수도권에 한한 1km인 이격거리를 완화해 일반주유소의 알뜰주유소 전환을 유도하고, 이를 통해 기름값 하락을 거들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땅값이 비싼 수도권에는 알뜰주유소가 거의 없어 도심권 이격거리 제한은 무의미하다. 전국에서 기름값이 가장 비싼 서울에 위치한 알뜰주유소는 33곳, 서울 다음으로 기름값이 비싼 경기도에 위치한 알뜰주유소 역시 58곳에 불과하다. 전체 알뜰주유소(1269곳) 중 서울과 경기도 분포 비율은 각각 2.6%, 4.6% 정도다. 알뜰주유소는 대부분 지방에 분포하고 있다.

알뜰주유소 전환을 원하는 곳은 대부분 지방 자영주유소다. 수도권에 있는 대형 자영주유소는 알뜰주유소로 전환할 이유가 없는 상황에서 도심 알뜰주유소 이격거리 제한 완화가 필요한지 의문이다. 

알뜰주유소 정책의 목적은 '기름값 인하'다. 정유사로부터 싼 가격에 기름을 대량으로 구매해 시장에 공급함으로써 유가를 인하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알뜰주유소 정책 시행 후 시민들은 '기름값 인하'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알뜰주유소는 기름값이 비싼 수도권에 많지 않고, 지방에 편중돼 있어 체감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오히려 반대의 결과를 낳았다. 알뜰주유소 확대에 따른 치열한 가격인하 출혈 경쟁으로 일반주유소의 휴·폐업이 가속화 됐다. 실제로 지난 2016년 1만 1899곳에 달하던 국내 주유소는 지난해 말 1만 1142곳으로 5년 새 757곳이 문을 닫았다. 정부의 각종 지원과 석유공사에서 싼 기름을 공급받는 알뜰주유소의 저가격 정책으로 인해 대도시보다는 지방주유소의 경영난이 심각해졌다. 지방의 석유유통시장 생태계가 파괴된 것이다.

주유업계 관계자는 "수도권의 대형 자영 주유소들은 정유사와 (기름) 공급가를 교섭할 권한도 있어 굳이 정부 규제 받는 알뜰 주유소로 전환할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통상적으로 정유사는 주유소에 임의 가격으로 제품을 공급한 뒤 1~2주가량 지나 확정 가격을 통보해 정산한다. 이를 정유사와 주유소간 '사후정산제'라고 한다. 사후정산으로 타격을 받는 곳은 일부 지방 자영주유소에 불과하다. 가격을 모르고 제품을 구입하니 마진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알뜰주유소 이격거리 제한 완화와 함께 정부는 알뜰주유소로 전환하는 주유소에 대해 한시적으로 소득세 또는 법인세 감면혜택을 10% 상향 조정한다고도 밝혔다. 기획재정부가 지난해 12월 20일 대통령 주재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발표한 '2022년 경제정책방향'의 후속조치다. 기재부가 지난달 17일 입법예고한 조세특례제한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따르면 올해 알뜰주유소로 전환한 주유소 중 석유공사로부터 50% 이상을 구매하는 주유소를 대상으로 중소기업 특별세액감면율을 2023년까지 한시적으로 상향 적용한다.

올해 1월 1일부터 2023년 12월 31일까지 해당 알뜰주유소 사업에서 발생하는 소득에 대한 소득세 또는 법인세를 소기업은 10%에서 20%로 감면율을 높이고, 중기업의 경우 수도권에서는 10%를 신규 적용하며, 비수도권은 5%를 15%로 각각 10%씩 상향 적용한다.

기존에도 알뜰주유소 사업자에게 석유 저가 제공은 물론 시설비 지원, 소득세·법인세·지방세 감면 등 온갖 특혜를 안겨줘 주유소업계는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반발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알뜰주유소의 세금 감면 혜택을 더 늘리겠다는 것이다.

업계에선 대선을 앞두고 비수도권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는 지역 유지들의 표심을 노린 정책이란 목소리가 나온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유가는 지금보다 더 오를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컨트롤 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아 당분간 물가 상승이 이어질 전망이다.

알뜰주유소 이격거리 제한 완화라는 번지수 잘못 찾은 정책으로 '기름값 하락'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 표퓰리즘의 덫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실효성 있는 대책은 나오기 힘들다는 것을 정부는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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