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재용 구속한 검사"... 신임 금감원장 言行이 불안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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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재용 구속한 검사"... 신임 금감원장 言行이 불안한 이유
  • 유경표 기자
  • 승인 2022.07.05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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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25시] '檢업적 자찬' 이복현 원장 言行 논란
공인회계사 출신 특수통, 이재용 구속 주도
"아직도 본인이 검사인 줄" 법조계 안팎 쓴소리
금감원 삼바 분식 감리에 '정치적 입김' 의심도
尹 대통령 두터운 신임... 관치 청산, 금융범죄 엄단 등 난제 산적
이복현 신임 금융감독원장. 사진=연합뉴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사진=연합뉴스

이복현 금감원장이 부장검사였던 시절, 공판 취재 현장에서 그를 본 적이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특경가법 위반 의혹 사건 파기환송심 공판에서였다. 이복현 부장검사에 대한 첫 인상은 ‘저돌적이며 열정적인 인물’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공판 도중 수시로 검사석에서 일어나 목에 핏대를 세우며 재판부와 충돌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재판부에 대한 항의의 뜻으로 법정을 중도 퇴장하는 등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변호인단과는 증인신문 사항을 놓고 더 자주 각을 세웠다. 좋게 말하면 저돌적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과격했다. 

부장검사 이복현이 보여준 공판정에서의 태도는 여느 검사의 그것과는 분명 결이 달랐다. 그의 과장된 언행에 대해서는 의도된 도발이란 관측이 있었다. 언론을 이용해 검찰에 불리한 흐름을 뒤집기 위한 고도의 책략이었다는 분석도 맥락을 같이 한다. 그의 언행은 해당 사건 보도에 영향을 미쳤다. 상당수 언론은 그의 돌출행동을 탓하기 보다 재판 진행이 불공정하다는 검찰 주장에 더 무게를 뒀다.

공판은 양측의 법리적 주장이 씨줄과 날줄로 치밀하게 엮이며 사건의 전체 그림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을 거친다. 이복현 검사는 법정을 휘감는 팽팽한 긴장을 과장된 언행으로 깨트렸다. 그가 언론을 염두에 두고 의도된 도발을 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의 전략은 적지 않은 성과를 냈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이재용 구속한 검사"... 납득 어려운 失言

최근 이 금감원장을 둘러싸고 불편한 소문이 돌고 있다. 금융계 동향에 밝은 소식통에 따르면, 이 금감원장은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수사와 이재용 부회장 구속을 본인 최고의 ‘업적’ 중 하나로 자찬(自讚)한다는 말이 들려온다. 한 두 사람이 전하는 이야기도 아닐뿐더러 공적·사적 자리를 가리지 않는다는 증언까지 더해지는 사정을 고려하면 단순한 풍문은 아닌 듯 하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2016년 12월, '최순실 등 민간인의 의한 국정농단 의혹' 특별수사팀에 합류하며, 삼성 사건을 처음 접했다. 전 대검 중수부장 박영수 변호사가 이끈 특검팀은 '삼성 특검'이란 별칭이 붙을 만큼 이재용 부회장 혐의 입증에 각별한 공을 들였다. 특검은 국정농단 사건에서 문제가 된 대통령의 기업 총수 상대 뇌물 강요 혐의를 넘어, 삼성그룹 전반으로 수사망을 넓혔다. 특검이 조준한 핵심 혐의는 '삼성 경영권 부당 승계 의혹'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과 구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의 시세조종 의혹을 두 축으로, 삼성이 그룹 차원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조기 승계를 위해 핵심 계열사를 동원, 분식회계와 주가조작 등 위법행위를 범했다는 것이 특검의 기본 시각이었다. 이 부회장 수사에 대해서는 '민간인 국정농단 사건 진상규명이란 특검 본질에서 벗어났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으나 특검팀 움직임에는 변화가 없었다. 

이 검사는 특검팀에서 윤석열 당시 대전고검 검사, 한동훈 중앙지검 부장검사와 호흡을 맞춰 이 부회장 구속을 주도했다. 이들 3인방은 이듬해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처음 시행된 검찰 인사에서 모두 승진했다. 윤 검사는 서울중앙지검장, 한 부장검사는 중앙지검 3차장, 이 검사는 중앙지검 특수2부 부부장으로 각각 영전했다. 이 검사는 이후 춘천지검 원주지청 근무를 거쳐 19년 8월 중앙지검 특수2부장에 발탁, 삼성 경영권 부당 승계 의혹 수사를 지휘했다.

이 부장검사는 2020년 6월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범죄 혐의에 다툼의 여지가 있으며, 소명이 부족하다'는 취지로 청구를 기각했다. 그에 앞서 민간전문가로 구성된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는 이 부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와 관련, "수사도 기소도 하지 말라"는 권고를 '찬성 10, 반대 3'의 압도적 표차로 의결했다. 당시 이 부장검사는 방대한 서면을 들고 직접 대검수사심의위에 참석, 이 부회장 구속의 상당성과 필요성을 설명했으나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심의위원들의 마음을 얻는데 실패했다. 심의위원들은 '혐의를 확신할만한 입증이 부족하다'는 취지로 '수사 중단 및 불기소'를 권고했다. 

민간 위원들의 강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부장검사는 같은해 9월, 이 부회장 등 삼성 전현직 경영진 10명을 자본시장법 등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이 부장검사가 직접 구속 수사의 필요성을 역설했음에도 민간 위원들이 이를 외면했다는 사실은, 삼성 사건 전반에 대한 검찰의 수사 부실을 반증하는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금융감독원 전경. 사진=시장경제DB
금융감독원 전경. 사진=시장경제DB

 

금감원장의 가벼운 입, 시장에 잘못된 시그널 줄 수도

검사 시절 윤석열-한동훈(현 법무장관)-송경호(현 중앙지검장)로 이어지는 특수통 칼잡이의 적통을 이었던 그가 과거 무용담을 소개했다고 해서 이를 탓하고 싶지는 않다. 공직에 있지 않은 자연인이라면 문제로 삼을만한 일도 아니다. 그러나 그의 현직이 금융감독원장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금융감독원은 전국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은 물론 시장질서 교란행위 등을 감시·적발하는 사실상의 사정업무를 수행한다. 금융위원회의 분식회계 의결, 자본시장법 위반 의결, 동 의결에 따른 금융기관 및 그 임직원 등에 대한 제재처분은 모두 금융감독원의 감리·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이뤄진다. 금감원 감리 혹은 검사 결과에 따라 당해 기업 내지 금융기관의 존폐가 달라질 수 있다.

금감원의 감리, 검사 결과 발표는 증권시장 흐름을 좌우하는 중대 변수 가운데 하나이다. 금감원 소속 직원의 신분은 민간인이지만 그 역할과 위상은 검찰 못지 않다. 그만큼 금감원장은 그 누구보다 신중한 처신을 요구받는 자리이다. "내가 이재용 구속한 검사"라는 신임 금감원장의 가벼운 언행을 염려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편집자주] 

<삼바 분식 의혹? 국내 최고 공신력 회계기준원도 "위법 없다"> 

2017년 2월 16일 진웅섭 당시 금감원장은 국회 정무위원회 업무보고 중 삼바 분식회계 관련 특별감리를 해야 한다는 일부 의원의 질의에 이렇게 답했다. 

“여러 외부평가를 통해 문제가 없다는 결과가 나왔고, (금융감독원 특별)감리는 구체적인 혐의가 나와야 가능합니다. 삼성바이오 관계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에 대한 회계처리는 2015년, 2016년 반기보고서에 대한 감사나 한국공인회계사회가 실시한 위탁감리에서도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16년 실시된 삼바 위탁 감리에 참여한 수도권 사립대 A교수는 <시장경제>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논란의 핵심은 연결회계를 적용하다가 지분법 회계로 변경한 사실에 대한 당부 판단인데, (감리 결과) 고의 분식을 했다고 볼만한 사정은 없었습니다. 다른 감리위원들의 견해도 같았습니다.”

회계학계 원로 중 한명인 그는 “K-IFRS가 부여한 자율의 범위를 위법하게 넘어섰다고 볼만한 사정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부연했다.

공인회계사회를 통한 금감원의 1차 감리 결과를 금감원은 스스로 번복했다. 17년 금감원은 재감리에 착수, 공인회계사회의 감리 결과를 뒤집는 발표를 했다. 지분법 회계를 적용한 삼성바이오의 2015년 재무제표는 위법하다는 금감원 재감리 결론이었다. 다만 금감원은 연결회계에 근거한 삼성바이오의 2012~2014년 재무제표 작성은 기업이 선택할 수 있는 사안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2018년 다시 한 번 입장을 바꿨다. 3차 감리를 통해 불과 1년 전 본인들의 실시한 재감리 판단을 변경했다. 이번에는 2012년부터 지분법 회계를 적용해야 했다며, 삼성바이오의 2015년 이전 재무제표 작성은 모두 위법하다고 결론내렸다. 

삼바 분식 의혹에 대한 전문가그룹의 견해를 살필 때 놓쳐서는 안 되는 이벤트가 있다. 공인회계사회의 위탁 감리가 실시된 16년 말 열린 ‘IFRS 질의회신 연석회의’가 그것이다.

‘IFRS 질의회신 연석회의’는 금감원에 대한 참여연대의 질의를 계기로 개최됐다. 금감원은 회의가 끝난 뒤 참여연대에 ‘삼바 회계처리는 적법했다’는 취지의 답변을 보냈다.

회의 개최 사실과 그 결론은, 이 사건 실체를 규명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증거’로서 의미를 가진다.

회의에는 금융감독원, 한국회계기준원, 한국공인회계사회, 대형회계법인 소속 회계사, 삼바 회계담당자, 회계학 전공 교수 2명 등이 참여했다. 참석자 면면에서 알 수 있듯 정부와 공공기관, 회계법인과 학계가 망라된 최고의 전문가 회의였다. 특히 회계기준원 관계자가 참석한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회계기준원은 국내 회계처리 기준의 제정과 개정, 해석, 기업 회계관리자 및 회계법인 등의 질의에 대한 회신을 담당하는 독립된 민간 기구이다. 기업에 있어 회계기준원의 답변만큼 강력한 공신력을 가지는 문서도 없다.

법원도 위 회의의 회신결과를 눈여겨 봤다.

19년 1월 22일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는 삼성바이오가 금융위 제재처분의 효력을 정지해 달라며 낸 신청사건을 인용했다. 서울고법과 대법원은 효혁정지신청을 받아들인 1심 판단에 위법이 없다며 금융위 측의 항고 및 재항고를 기각했다.

행정법원 재판부는 가처분 신청 인용의 주된 이유로 두 가지 사실을 꼽았다. 하나는 금융당국이 분식회계 의혹을 최초 제기한 시민단체 참여연대의 관련 질의에 ‘삼성바이오 회계처리는 적법했다’는 답변을 보낸 점, 두 번째는 다수의 회계전문가들이 ‘삼성바이오의 2015년 회계처리 변경은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에 부합한다’는 의견을 밝힌 점이다.

 

금감원, 삼바 분식 판단 세 차례 말 바꿔... 배후 정치적 입김 시각도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이나 제일모직-삼성물산 시제조종 의혹은 1심 공판이 진행 중이다. 삼바 분식 의혹에 대해서는 금융위 분식 의결의 당부를 심리하는 별도의 행정소송이 존재한다. 두 건 모두 1심이다. 무엇이 진실인지 확인하기엔 아직 갈길이 멀다. 더구나 삼바 분식 의혹의 경우는 국내 학계를 대표하는 회계학자와 자본시장법 전문가들이 금융위원회의 분식 의결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기업과 회계법인의 자율적 판단을 중시하는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 도입 취지, 자본시장법의 제규정, 삼바 분식 의결이 나오기까지의 과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금융위원회 분식 의결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견해가 다수이다. 

무엇보다 금융위 분식 의결의 바탕이 된 금감원 감리 결과가 3년 동안 무려 3번이나 바뀌었다는 사실은 삼바 분식 판단의 신뢰도에 강한 의문을 던진다. 금감원의 이같은 행태는 그 자체로 상식 밖이기 때문이다. 금감원의 갈지자 행보를 놓고 삼바 분식 판단 배후에 정치적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는 건 당연했다.  

검찰은 삼바 분식회계 혐의 입증에 난항을 겪고 있다. 2017년부터 이어진 이 부회장 관련 공판에서 삼바 분식을 유죄로 판단한 재판부는 아직 없다. 뇌물 등 혐의 국정농단 사건 1심과 항소심 재판부는 물론이고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과 서울고법 파기환송심 재판부도 삼바 분식 의혹 관련 검찰 측 주장을 배척했다. 

대검수사심의위원회가 이 부회장에 대한 수사와 기소 중단을 권고한 사실, 이 부회장 및 삼성 관련 공판 어디에서도 삼바 분식 의혹에 대한 유죄 판단이 나오지 않은 사실을 종합할 때 '삼바 분식 의혹'과 '이 부회장 구속'을 자신의 치적으로 자찬한 신임 금감원장의 언행은 경솔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지금 그가 해야 할 일은 과거 치적에 대한 자찬이 아니라, 오히려 삼성바이오 분식 의혹 관련 전임자 판단에 오류는 없었는지 되짚는 것이다. 그것이 '공인회계사 출신 전직 특수통 칼잡이'로서, 신임 금감원장이 취해야 할 책무는 아닌지 숙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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