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증권, 창사 60주년… "큰大 믿을信 100년 기업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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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증권, 창사 60주년… "큰大 믿을信 100년 기업 선언"
  • 양일국 기자
  • 승인 2022.06.15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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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당시 5대 대형사 중 유일 생존
금융·부동산 아우르는 밸류체인 구축
작년 사상 최고 실적…금융그룹 성공가도
대신증권이 60번째 생일을 맞는다. 대신증권은 오는 20일 창립 60주년을 맞아 '60년 사진전, 헌혈, 문화강연' 등 직원들을 위한 다양한 행사를 진행한다고 15일 밝혔다. 사진=대신증권 제공
대신증권이 60번째 생일을 맞는다. 대신증권은 오는 20일 창립 60주년을 맞아 '60년 사진전, 헌혈, 문화강연' 등 직원들을 위한 다양한 행사를 진행한다고 15일 밝혔다. 사진은 2016년 12월에 이전한 현재 본사 사옥(명동). 사진=대신증권 제공

대신증권이 60번째 생일을 맞는다. 대신증권은 오는 20일 창립 60주년을 맞아 '60년 사진전, 헌혈, 문화강연' 등 직원들을 위한 다양한 행사를 진행한다고 15일 밝혔다. 행사를 통해 회사가 걸어온 60년 발자취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대신증권의 창립 60주년은 부침이 유독 심했던 한국자본시장에서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대신증권은 1962년 삼락증권으로 출발했다. 1975년 고(故) 양재봉 창업자가 인수해 대신증권으로 사명을 바꾼 후, 한국자본시장을 대표하는 플레이어로서 성장해 오고 있다. 창업자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큰대 믿을신' 슬로건은 1987년 TV CF를 통해 많은 국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양재봉 창업자가 출장길에 열차를 타고 가던 도중, 열차 바퀴가 레일과 마찰하면서 일어나는 소리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전해진다.

대신증권은 슬로건에 걸맞게 창사 이후 60년 동안 외환위기(IMF), 글로벌 금융위기 등 자본시장의 온갖 부침을 철저한 리스크관리로 극복해왔다. 1990년대 말 펀드열풍이 불었던 당시 다른 증권사들이 20%대 고금리의 대우그룹 회사채를 편입한 채권형 수익증권을 무차별적으로 판매하고 있었다. 시중의 자금은 증권사로 몰렸다. 반면 대신증권은 대우그룹 회사채를 편입한 수익증권의 판매를 전면 중지시키고 안전한 국공채 위주의 채권형 펀드만 취급했다. 이후 대우그룹이 부도 처리되며 대우그룹 계열 기업의 회사채를 편입한 수익증권을 판매한 증권사들은 대규모 환매 사태를 맞았다.

'경제사변'이라 불릴만한 1997년 IMF외환위기도 꿋꿋하게 견뎌냈다. 1994년 종합주가지수가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1995년에 보유하고 있던 상품주식을 대거 처분해 단기차입금을 모두 상환한 것이 결과적으로 '신의 한수'가 됐다. 2년 뒤 1997년 12월 IMF 외환위기가 발생했다. 연 30%에 육박하는 고금리 상황에서 많은 기업들이 부도사태를 맞았지만 단기차입금을 모두 상환하고 무차입경영을 하던 대신증권은 주위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IMF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당시 5대 증권사였던 대신, 대우, 동서, 쌍용, LG 가운데 현재 회사가 없어지거나 경영권이 바뀌지 않은 증권사는 대신증권이 유일하다. 

1976년 대신증권 첫 본사 전경(명동 국립극장 앞). 사진=대신증권 제공
1976년 대신증권 첫 본사 전경(명동 국립극장 앞). 사진=대신증권 제공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도 대신증권의 리스크 경영은 빛을 발했다. 대신증권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구체화되기 전 국제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을 감지하고 철저한 리스크 관리에 들어갔다. 2007년도 증권업계가 호황기를 보내면서 많은 증권사들이 자기자본투자를 확대하고 지점을 증설하며 공격적인 경영에 나선데 비해 대신증권은 오히려 속도를 늦췄다. 

과도하게 진행된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투자도 억제했고 기존 투자자금도 회수해 미리 유동성을 확보했다. 한국 증권사 중 최초로 해외DR 1억2,900백만 달러를 발행해 런던증권거래소에 상장하는 등 선제적으로 유동성을 늘렸다. 위험도가 높은 상품 운용규모도 대폭 줄였고 보유 채권은 안정성과 환금성이 높은 초우량 채권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했다.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부실 위기에서 시작된 금융위기 한파와 2011년 그리스발 유럽금융위기로 많은 금융사들이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 시기 대신증권은 오히려 양호한 실적을 보였다.

100년 넘는 전통을 가진 국내 은행들도 IMF를 겪으며 파산과 피합병의 진통을 겪었다. 심지어 국내 금융투자회사보다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글로벌IB들도 파산하거나 경영권이 바뀌는 일이 숱하게 벌어졌다. 메릴린치, 리먼브러더스, 베어스턴스 등 유수의 글로벌투자은행(IB)도 글로벌 금융위기 국면에서 파산하거나 경영권을 잃었다. 이렇듯 금융기관의 역사는 곧 위기극복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투자은행(IB) 名家, 한국자본시장 개척

대신증권은 IB로 한국자본시장을 선도하며 성장해왔다. 증권업의 핵심 경쟁력인 인재와 시스템 측면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보유했기 때문이었다. 1991년 업계최초로 인수합병(M&A) 주선업무 겸영인가를 얻어냈고, 90년대 수많은 인수 주선 딜을 성공시키며 기업공개(IPO)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2000년대에 들어서 대신증권의 업계 지위에 변화가 생겼다. 우수한 IB인력들이 빠져나갔고, 저가수수료로 무장한 증권사가 등장하면서 주식중개 부문의 경쟁력이 약화됐다. 증권업의 트렌드도 중개업에서 투자의 시대가 온 것이다. 자본의 크기가 증권사의 경쟁력으로 이어지며 금융지주, 대기업계열의 금융투자회사는 앞다퉈 자기자본 확충에 나섰다. 자본시장법이 개정되면서 자기자본 규모에 따라 비즈니스 영역이 결정됐고, 자본크기가 신규비즈니스에 대한 진입장벽이 됐다. 증권을 모태로 성장한 독립계 증권사였던 대신증권은 규모의 경쟁에서 밀릴 수 밖에 없었다. 

이 시기 증권가 '대형화' 바람 속에 대신증권이 선택한 길은 차별화였다. 제한된 자기자본을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에 나섰다. 증권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금융기관을 인수하고, 새롭게 인가를 받아 신규비즈니스에 진출하며 재기를 노렸다. 먼저 출발은 저축은행 인수였다. 2011년 8월 중앙부산, 부산2, 도민저축은행의 자산을 자산·부채 인수(P&A) 방식으로 인수해 대신저축은행을 출범한지 10년 만에 총자산 기준 15위권 회사로 성장시켰다. 

2014년에는 우리에프앤아이를 인수해 대신에프앤아이를 출범시켰다. 주력사업인 부실채권(NPL) 비즈니스는 물론 부동산 등 대체투자까지 영역을 확대했다. 계열사를 통해 국내 최고급아파트 '나인원한남' 개발사업도 성공리에 마무리했다. 2019년 대신자산신탁을 설립해 부동산 신탁업도 시작했다. 자산관리회사(AMC)인가를 받고 리츠 시장을 본격 공략하며 전문성을 강화하는 등 경쟁력을 높였다. 글로벌투자 확대를 위해 미국 뉴욕, 싱가포르, 일본 동경에 현지법인도 설립했다.

대신금융그룹은 창립 60주년을 맞아 그룹의 시너지를 모아 리츠상품을 출시하겠다는 계획이다. '대신 글로벌 코어 리츠'로 하반기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전세계 핵심지역의 부동산만을 추려 리츠에 담겠다는 계획이다. 6~7월 국토부 영업인가 신청을 준비 중이고, 프리IPO를 통한 기관투자 유치를 논의하고 있다. 초기 리츠 설립은 시가총액 4,200억원 규모로 시작할 예정이다.

'대신 글로벌 코어 리츠'는 안정성과 분산투자 효과를 갖춘 유럽, 일본 등 선진국의 우량자산을 담은 멀티에셋 전략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축할 방침이다. 초기 유럽 소재 아마존 물류센터와 일본 주요기업의 핵심지역인 지요다구에 위치한 A등급 코어 오피스, 출퇴근이 용이한 주오구 핵심지역에 위치한 멀티패밀리 임대주택 등의 편입자산으로 출범해, 미국 맨하튼, 유럽 프랑크푸르트, 파리 등에 위치한 우량 코어부동산을 편입해 나갈 예정이다. 

1985년 대신증권 여의도 사옥. 사진=대신증권 제공
1985년 대신증권 여의도 사옥. 사진=대신증권 제공

연 5~6% 수준의 배당수익률을 목표로 하며, 배당은 반기마다 시행할 계획이다. 원금의 100%를 환헷지해 환율변동 리스크를 줄여나갈 계획이다. 대신증권은 이 같은 사업다각화를 통해 금융과 부동산을 아우르는 '밸류체인'을 구축해왔다. 부동산을 활용하지 않고는 고객들의 자산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없다고 판단이 깔려있었다. 대신증권은 기존 증권, 자산운용, 저축은행 등 금융 부문과 에프앤아이, 자산신탁 등 부동산 부문의 전문성을 결합해 새로운 고객가치를 만들어 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신증권은 사업다각화를 통한 차별화로 지난 60년 중 최근 10년 동안 가장 드라마틱하게 체질을 개선해왔다. 과거 '주식과 채권만 하는 회사'였다면, '주식과 채권도 하는 회사'로 탈바꿈했다. 그 결과 본격적으로 금융그룹으로서 성장가도를 걷기 시작, 최근 10년간 대신증권이 보유한 100% 자회사는 세 배가 늘었다. 이들과 함께 지난 해에는 연결기준 영업이익 8,855억원을 기록, 역대 최고 실적기록도 달성했다. 

 

최초 전산화·문화재단... 증권업계 선도

대신증권은 IT불모지에 가까웠던 국내 증권업계에서 혁신을 이끌어 온 IT선구자였다. 초기 증권가 IT분야에서 대신 최초가 곧 업계 최초로 통했다. 1976년 증권업계에서 처음으로 전산터미널을 도입하고, 1978년 자체전산기를 가동시키며 전산 기반을 닦았다. 

1979년 국내 처음으로 대형 전광시세판을 설치하고, 이듬해인 1980년 전국 영업점을 온라인화했다. IT기반 증권서비스를 선도한 선제적 투자는 업계에 획기적인 변화를 이끌었다. 1995년에는 업계 최초로 종합계좌시스템(One card system)을 도입해 하나의 계좌에서 모든 금융거래를 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다. 분필로 흑판에 시세를 적던 시절 업계 최초 전산화 시도였다. 

1979년 대신증권이 선보인 최초 온라인 전광시세판. 사진=대신증권 제공
1979년 대신증권이 선보인 최초 온라인 전광시세판. 사진=대신증권 제공

1997년 국내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의 시작이자 한국온라인 증권거래 플랫폼의 원조격인 '사이보스' 시리즈를 출시해 누적사이버거래액 1,000조원을 최초로 돌파했다. '사이보스'는 대한민국 투자문화를 바꾼 플랫폼으로 평가받고 있다. 온라인거래가 미래 증권거래의 대세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전사적으로 시스템 개발과 서비스 업그레이드에 나선 결과다. 

대신증권은 이후 업계 최고 수준의 IT기술력을 바탕으로 동남아시아 시장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대만의 대형증권사인 보래증권과 2004년 증권업계 최초로 자체개발 온라인주식거래 시스템을 수출했다. 이후 인도네시아 만디리증권, 태국 부알루앙증권에까지 온라인 플랫폼을 수출하기도 했다.

최근 금융권의 상식이된 'ESG경영'의 개념이 있기 이전부터 대신증권은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해온 기업이었다. 고(故) 양재봉 대신증권 창업자는 창업 직후부터 "기업은 이익을 사회에 환원해 사회 각 부문의 조화롭고 균형있는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는 신념을 강조해왔다. 그는 1976년 장학회 설립 의사를 밝히며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을 위한 여러 방안을 고민했다. 송촌장학회로 시작한 대신증권의 사회공헌활동은 1990년 업계 최초로 설립한 대신송촌문화재단을 통해 이후 지원 규모와 대상 등이 지속 확대됐다. 

올해로 31년을 맞는 대신송촌문화재단은 기본 재산 규모가 370억원에 이르는 대형 재단으로 성장했다. 우수한 인재 발굴과 육성을 위해 매년 장학생을 선발 하고, 문화예술과 학술연구, 의료부문 등 다양한 분야에 적극적으로 도움의 손길을 전했다. 지금까지 140억원 이상의 성금이 사회 곳곳에 전해졌다.

30여년동안 대신송촌문화재단을 통한 지원층은 더욱 촘촘해졌다. 대신증권은 1996년부터 진행해오고 있는 구순구개열 환아 수술비 지원사업 등 의료사업에 힘써왔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구순구개열 환아를 위해 건국대, 부산대, 전남대 등 대학병원에 총 3억8,000만원 규모의 수술비 및 의료비를 기부해왔다. 

지금까지 총 425명의 환아들에게 수술비를 지원했다. 최근에는 건강보험 사각지대에 놓인 '이른둥이' 의료지원을 시작했다. 이 밖에도 국립암센터 발전기금, 의료봉사 후원금 등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한 의료사업 지원에 나서고 있다.

지역사회 지원에도 적극적이다. 대신증권은 2004년부터 전남 나주지역에 사랑의 성금을 전달하고 있다. 매년 나주시 건강가정 다문화가족지원센터와 나주지역 일대의 사회복지시설을 방문해 가정위탁아동 및 소년소녀 가정, 다문화가족, 노인요양원, 고아, 장애인을 직접 만나고 성금을 전달했다. 충북 괴산군에서는 저소득층, 중증장애인 등을 지원하는 '희망 네트워크사업'도 한창이다. 다문화가족의 안정적인 가족생활을 지원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대신증권은 단순 기부 활동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임직원과 대신금융그룹 고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사회공헌 활동을 지향하고 있다. 수재민 지원, 서해안 기름유출사고 재난복구활동, 시각장애인 골프대회 개최, 연탄배달, 희망의 집짓기, 어린이 미니도서관 조성, 국제 아동돕기를 위한 모자뜨기, 크레온-북 릴레이 등 임직원참여를 통한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다.

이 외에도 대신증권은 주주친화정책으로 유명하다. 지속적인 자사주 매입과 현금배당을 통해 주주가치제고에 적극 나서고 있다. 특히 대신증권의 배당정책은 안정적 배당투자를 원하는 주주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아왔다. IMF 이후 24년 연속 현금배당을 실시하며 배당성향 측면에서 업계 최고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명동시대 재개막… '초우량 클린컴퍼니' 선언 

대신증권은 1976년 현 명동예술극장(구 국립극장)을 첫 사옥으로 가졌다. 당시 명동은 금융의 중심지로 대신증권 명동사옥의 전광시세판은 늘 문전성시를 이뤘다. 1980년대 정부 자본시장 활성화 방침으로 여의도에 새 사옥을 지어 이전했다.

1997년 12월 IMF 구제금융을 앞둔 10월 고(故) 양회문씨가 그룹 부회장에 취임했다. 고(故) 양재봉 창업자의 차남인 양회문 부회장은 취임과 함께 난국을 극복하기 위해 조직체계를 재정비했다. 1998년 런던과 뉴욕법인을 폐쇄하고, 동경지점은 사무소로 전환했다. 고(故) 양재봉 창업자는 2001년 현업에서 은퇴를 하고 양회문 부회장에게 2001년 회장직을 물려줬다. 2대 회장 고(故) 양회문 회장은 1975년 대신증권 공채 1기로 입사해 10년 동안 지점영업에서부터 인수, 법인, 자산운용, 기획, 인사 등 증권 전 부문에 걸쳐 실무경험을 쌓으면서 경영수업을 받았다.

2001년 회장 취임 후 고(故) 양회문 회장은 회사의 내실을 다지면서 투명경영과 주주중심의 경영을 하며 대신증권을 초우량 클린컴퍼니로 재탄생시켰다. 이 과정에서 대신금융그룹은 생명, 정보통신 등을 계열분리하고, 대신증권, 투신운용, 경제연구소의 증권전문기업으로 변신해 조직효율화를 이뤘다. 

철저한 리스크 관리, 선택과 집중을 통해 지속가능경영 체제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온라인 증권거래에 대한 선제 투자로 많은 수익을 올렸다. 이때 대신증권은 경영효율성이 높은 지배구조우수기업, 주주중심의 경영을 하는 배당우수기업, 외국인투자가가 가장 선호하는 기업으로 선정됐다. 기업경영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2002년 업계 최초로 ESOP(Employee Stock Ownership Plan, 우리사주조합제도)를 실시했다.

2004년부터는 이어룡 회장이 대신금융그룹을 이끌고 있다. 고(故) 양회문 회장의 부인인 이 회장은 직원, 고객과 격의 없는 소통의 리더십으로 취임 이후 증권 뿐 아니라 모든 계열사의 사업부문을 안정 궤도에 올렸다. 이후 2016년 말 32년 만에 명동으로 돌아오면서 총 7개의 계열사가 한지붕 아래 모이게 됐다. 1985년 여의도로 이전할 당시 대신증권은 총자산 1,239억원, 자기자본 299억원, 임직원 590명에서 현재 총자산 23조5,050억원, 자기자본 2조6,029억원, 그룹임직원 2,000여명의 회사로 성장했다.

올해 60주년을 맞아 대신금융그룹은 명동 사옥명을 기존 '대신파이낸스센터'에서 'Daishin 343'으로 변경한다. 사옥 주소인 '중구 삼일대로 343'에서 착안했다. 새로운 네이밍과 함께 대신금융그룹은 또 한 번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대신증권 관계자는 "업계에서 가장 유니크한(Unique)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앞으로도 대신만이 갖고 있는 차별화된 경쟁력을 찾아 나가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면서 "틀에 얽매이지 않는, 통찰력 있는 시각으로 변화하는 시대에 민첩하게 대응하는 투자회사로 거듭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대신증권은 주식시장의 강세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황소상을 만들었다. 전남대학교 미술대학장 김행신 교수의 작품으로, 역동적인 대신그룹의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실제로 황소를 사들여, 그 행태를 연구하는 등 1년여의 제작기간을 거쳐 완성했다고 한다. 오랜기간 여의도 대신증권 사옥 앞을 지켜왔으며, 지금은 대신증권 역사관이 위치한 위례사옥에 놓여져 있다. 한국거래소, 금융투자협회에 있는 황소상과 함께 여의도 3대 황소상으로 불리기도 했다. 사진=대신증권 제공
대신증권은 주식시장의 강세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황소상을 만들었다. 전남대학교 미술대학장 김행신 교수의 작품으로, 역동적인 대신그룹의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실제로 황소를 사들여, 그 행태를 연구하는 등 1년여의 제작기간을 거쳐 완성했다고 한다. 오랜기간 여의도 대신증권 사옥 앞을 지켜왔으며, 지금은 대신증권 역사관이 위치한 위례사옥에 놓여져 있다. 한국거래소, 금융투자협회에 있는 황소상과 함께 여의도 3대 황소상으로 불리기도 했다. 사진=대신증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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