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6년만에 호암상 시상식 참석... '구원 등판' 시그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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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6년만에 호암상 시상식 참석... '구원 등판' 시그널
  • 유경표, 최유진 기자
  • 승인 2022.06.01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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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석방 후 취업제한 등 경영 복귀 '발목'
'퍼펙트스톰' 위기론 대두... 긴장하는 삼성
선제적 투자, 합종연횡... 오너 결단 없이 어려워
이 부회장 글로벌 인맥 활용 제약... 국가적 손해
450조 투자계획 의미 묻자 "목술 걸었다" 의지
31일 호암상 시상식이 열린 서울 신라호텔 로비로 들어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유경표 기자
31일 호암상 시상식이 열린 서울 신라호텔 로비로 들어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유경표 기자

삼성호암상 시상식이 열린 31일 오후 3시 30분쯤 서울 신라호텔 본관 로비에서 취재진 100여명의 플래시 세례가 한꺼번에 쏟아졌다. 회전문을 열고 들어온 인물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무려 6년만에 침묵을 깨고 참석한 것이다. 이 부회장은 일부 취재진들의 질문에도 답을 하지 않고 담담한 표정으로 시상식이 열리는 2층 다이너스티홀을 향해 묵묵히 계단을 올랐다. 

이 부회장이 최근 활발한 대외 활동에 나서고 있어 주목된다. 불과 하루 전 그는 방한 중인 팻 겔싱어(Patrick Gelsinger) 인텔 최고경영자(CEO)를 만나 파운드리를 포함한 반도체 분야 협력 방안을 숙의했다. 두 사람의 전격 회동은 글로벌 반도체 시장 1, 2위 기업이 경쟁력 강화를 위해 머리를 맞댔다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받았다. 

이 부회장의 호암상 시상식 참석에 대해 삼성 관계자는 “호암상 시상식이 선대 이병철 회장을 기리는 행사인 만큼, 아버지인 고(故) 이건희 회장을 이어 ‘인재경영’ 정신을 계승한다는 의미로 보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8월 가석방됐다. 같은 해 1월 서울고법 파기심 재판부의 실형 선고로 구속 수감된 이후 207일만이었다. 그간 한계가 분명했던 ‘옥중경영’에서 가까스로 벗어났지만, 5년간의 취업제한 등 법령상 규제에 발목이 잡혀 해외출장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 이 부회장은 자본시장법 위반 등 의혹 사건 공판에 매주 목요일마다 피고인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그가 지난 정권 5년 동안 법원에 출석한 횟수만 무려 120번에 달한다. 자본시장법 위반 의혹 사건이 아직 1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항소심과 대법원의 판결이 나기까지 수년이 더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회장은 최근 경영 보폭을 점차 넓히고 있다. 재판 출석 의무와 취업제한 규정 등으로 인해 본격적인 경영에 복귀하기에는 쉽지 않은 상황이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 글로벌 공급망 불안정 등 이른바 ‘퍼펙트 스톰’ 위기론이 대두되면서 이 부회장이 ‘구원투수’로 나서는 모양새다. 

이 부회장과 팻 겔싱어 CEO의 회동 역시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두 사람은 양사 경영진이 참석한 자리에서 ▲차세대 메모리 ▲팹리스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 ▲PC 및 모바일 등 핵심 사업 부문에서의 협력을 주제로 릴레이 회의를 가졌다. 

삼성에게 있어 인텔은 반도체 분야에서 경쟁하며 1, 2위를 다투는 회사이자, 더할 나위 없이 강력한 ‘우군’으로 평가받는다. 글로벌 IT업계에서 선두 기업간 합종연횡은 최고 경영진의 결단 없이는 생각하기 어려운 대형 이벤트이다. 북미와 유럽은 물론 인도 등 브릭스 국가와의 관계에서도 정재계 거물급 인맥을 구축한 이 부회장은 삼성 위기론이 불거질 때마다 직접 나서 중심을 잡았다. 

이 부회장은 이달 10일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과 외빈 초청 만찬에 참석했고, 17일에는 서울 용산구 주한 아랍에미리트(UAE) 대사관에 마련된 고(故) 셰이크 할리파 빈 자이드 나하얀 대통령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기도 했다. 지난달 20일에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방한해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을 방문하자, 이 부회장은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의 공장 안내를 직접 맡았다. 
 

평택 2라인 반도체 공장 전경. 사진=시장경제DB
경기 평택 2라인 반도체 공장. 사진=시장경제DB

 

발 묶인 삼성, 경쟁사들 거센 추격...
이재용 "목숨 걸고, 앞만 보고 간다"

이 부회장이 사법리스크에 발목이 잡힌 몇 년새, 삼성은 대내외 경영환경의 변화로 위기를 맞고 있다. 삼성이 초격차 기술로 30년간 우위를 점하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는 미국과 중국이 견제와 추격에 나서면서 삼성의 입지를 흔들고 있다. 특히, 거대한 내수시장과 국가적 지원을 받고 있는 중국 메모리 업계 성장은 위협적이다.

신성장동력인 시스템 반도체와 파운드리 분야는 여건이 더 불리하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는 지난해 4분기 매출액 기준 52.1%로 압도적 점유율을 기록한 반면, 삼성전자는 18.3%에 그쳤다. 삼성이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 확대에 사활을 걸고 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TSMC는 향후 3년간 1000억달러(113조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장기간 ‘총수 부재’로 정체됐던 삼성의 대규모 투자 계획은 최근 이 부회장의 행보와 맞물려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지난달 24일 삼성은 향후 5년간 반도체·바이오·인공지능(AI)·차세대 통신 등 미래 먹거리 사업 육성을 위해 450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전체 투자의 80%인 360조원이 국내에 투자되는 역대 최대 프로젝트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 26일 중소기업인 대회에 참석해 450조원 투자의 의미를 묻는 기자들 질문에 “목숨을 걸고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숫자는 모르겠고, 앞만 보고 가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난해 1월 평택 EUV 파운드리라인 투자를 결정하는 자리에서 “어려울 때일수록 미래를 위한 투자를 멈춰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6월 반도체 연구소 간담회에서도 “가혹한 위기 상황”이라며 “미래 기술을 얼마나 빨리 우리 것으로 만드느냐에 생존이 달렸다. 시간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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