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서 근거로 삼바분식 주장' A교수... 법정서 "계약서 본 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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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 근거로 삼바분식 주장' A교수... 법정서 "계약서 본 적 없다"
  • 유경표 기자
  • 승인 2022.04.25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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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pick] '삼바 vs 증선위 소송' 증인신문 분석
증선위 자문 교수 출석... 삼바분식 판단 지지
"합작계약서에 실현 불가능한 내용 없었을 것"
"계약서 실현 높으면, 콜옵션 지배력 현실화"
증선위, 검찰과 같은 시각에서 사건 조명
'계약서 봤느냐' 질문에 "본적은 없다" 답변
"회계전문가일뿐 바이오시밀러 잘 모른다"
檢, 분식입증 안되면... ‘이재용 경영권 부당 승계’ 공소 유지 어려워 

"삼바(삼성바이오로직스)가 미국 바이오젠과 에피스(삼성바이오에피스)를 합작설립하는 과정에서 ‘콜옵션’을 명시한 만큼, 이를 사실상의 실질적 의결권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에피스 설립 합작계약을 맺는 과정에 향후 전망을 담은 사업계획서가 반드시 있었을 것이고, 여기에는 실현 불가능한 내용이 담겨있지 않았을 것."

(중략)... "저는 회계전문가일 뿐, 바이오시밀러 분야에 대해선 잘 모른다. (에피스 사업계획서를 실제 본 적은 없고) 일반적인 상식에 비춰 설명한 것."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의 2018년 분식회계 의결 취소를 본안으로 하는 ‘삼성바이오 vs 증선위 행정소송’에서, 금융위 측 주요 증인이 “에피스 합작계약서나 사업계획을 담은 문건 등을 살펴 본 사실은 없다”고 진술했다.

증선위는 18년 11월 전원회의를 열고, “삼성바이오는 재무제표상 콜옵션 부채를 누락하는 방법으로 4조5000억원 상당의 대규모 분식을 했다”고 판단했다. 이후 계속된 관련 소송 등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확인된 사실에 따르면, 증선위 측이 꼽은 분식회계 의결의 근거는 ▲삼성바이오 파트너사인 미국계 글로벌 기업 바이오젠이 조인트벤처(에피스) 설립 당시부터 ‘동의권’을 보유한 점 ▲바이오젠이 향후 에피스 발행주식을 최대 50%-1주까지 매입할 수 있는 ‘콜옵션’을 확보한 점 등이다. 증선위 측 인사들은 삼바와 바이오젠 사이 체결한 합작사업계약서 등을 분식 의결의 또 다른 근거로 지목했다.

이들은 “계약서와 사업계획 등에 실현 불가능한 내용이 포함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콜옵션은 그 존재만으로도 ‘경제적 실질’이란 행사요건을 충족하므로 2015년 이전 삼성바이오가 에피스를 종속기업(자회사)으로 보고, 연결회계를 적용한 것은 위법하다”고 했다. 증선위 판단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에피스 합작계약서는 삼바 분식 의결을 뒷받침하는 주된 근거 중 하나가 된다.

이런 점에서 증선위 측 주요 증인의 위 진술은 ‘증선위 분식회계 판단의 당부’를 판단하는 데 있어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이같은 사실은 당시 증선위의 분식 판단이 위 증인의 그것과 같이, 팩트에 대한 검증보다 막연한 추론에 기댔을 가능성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증선위 자문 교수 “콜옵션 만으로도 지배력 인정해야”

20일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유환우 부장판사) 심리로 '증선위 2차 제재처분 취소청구 소송'이 속행됐다. 이 사건은 18년 11월 14일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삼성바이오 측의 회계 분식을 의결하면서 촉발됐다. 삼성바이오 측이 미국 측 투자자 바이오젠 보유 콜옵션 보유 사실을 은폐, 동 사실을 공시에서 누락하고 그 내용을 재무제표에 부채로 계상하지 않는 방법으로 회계를 분식했다는 것이 증선위 의결의 요지이다.

삼성바이오는 증선위 의결 직후인 그해 11월 말, 서울행정법원에 동 의결에 대한 취소 청구와 의결의 효력을 1심 판결 선고 시까지 정지해 달라는 취지의 가처분 신청을 함께 냈다. 법원은 19년 1월, 삼성바이오 측이 낸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 

이날 증선위 측 증인으로는 경희대 A교수가 출석했다. A는 2014년부터 2018년까지 한국 채택 국제회계기준(K-IFRS) 연석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금융감독원 회계자문 교수로 활동하면서 보수를 받은 이력이 있다.

그는 증인신문에서 “삼바가 에피스에 대한 2012~2014년 회계처리를 ‘단독지배’로 해선 안된다”고 했다. 삼바가 바이오젠과 에피스를 합작 설립하는 과정에서 ‘콜옵션’을 명시한 만큼, 이를 사실상의 실질적 의결권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것.

특히 A교수는 바이오젠 보유 콜옵션의 존재만으로도 경제적 실질을 인정해야 한다며 그 근거로 에피스 합작계약서를 꼽았다. 에피스 설립 관련 합작계약을 맺는 과정에 향후 사업 전망을 담은 문건이 반드시 있었을 것이고, 여기에는 실현 불가능한 내용이 담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삼성바이오로직스 3공장. 사진=시장경제DB
삼성바이오로직스 3공장. 사진=시장경제DB

 

'삼바 분식' 입증 안되면... ‘경영권 부당 승계’ 공소 유지 어려워 

서울중앙지법에서 매주 열리고 있는 ‘삼성 전·현직 경영진 자본시장법 위반 등 의혹’ 공판 핵심 쟁점 중 하나는 증선위의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결 당부이다.

이 사건 검찰 공소장은 두 가지 사건의 실재(實在)를 전제로 한다. 공소장을 지탱하는 두 가지 축은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과 제일모직 자회사였던 삼성바이오 분식회계이다. 삼성 미래전략실 주도로 이재용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 강화를 위한 일련의 경영권 승계 작업이 진행됐고, 이 과정에서 시세조종과 분식회계 등 위법행위가 벌어졌다는 것이다.

최근 검찰은 새로운 밑그림도 공개했다. 옛 제일모직 대주주였던 이 부회장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시점을 골라 모직-물산 합병을 추진했으며, 회계법인을 압박해 삼성물산 기업가치평가보고서를 조작했다는 주장이다.

공소장의 또 다른 축인 삼바 분식회계는 검찰 논리 전개의 안정성을 담보하는 역할을 한다. 합병 전 제일모직 주가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릴 필요가 있던 삼성 측이 그 자회사였던 삼성바이오 재무제표를 분식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바이오젠 보유 에피스 콜옵션 상당 부채를 누락·은폐하는 방법으로 분식이 이뤄진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위 두 가지 전제 중 하나라도 입증이 안 된다면 검찰 공소는 기본 틀이 무너진다.

사건 수사 초기, 검찰이 삼성바이오 압수수색에 집착한 이유도 이같은 사정에 기인한다. 삼바 회계 분식 혐의가 성립하지 않는다면,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의 근본 목적이 이 부회장 경영권 부당 승계에 있다는 검찰 논리는 완성될 수 없다. 검찰이 이 사건 수사 검사들을 ‘삼성바이오 vs 증선위 행정소송’ 증선위 측 소송수행자로 참여시키는 무리수를 두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사진=시장경제DB
사진=시장경제DB

 

“사업계약서, 실현 불가능한 내용 담지 않았을 것” 추측

A교수의 진술은 삼바 분식을 의결한 증선위 판단의 주된 논거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증선위가 분식 판단을 내린 결정적 근거 중 하나는 삼바와 바이오젠이 에피스 합작 설립에 합의하면서 체결한 계약 문건의 존재이다.

증선위와 동 위원회 판단을 지지하는 이들이 내세우는 논리는 A교수의 법정 진술과 같다. 사업계약서에 실현 불가능한 내용을 담지 않았을 것이므로, 이 사건 콜옵션은 그 존재만으로도 경제적 실질을 가진다는 것이다.

콜옵션의 존재만으로도 경제적 실질을 인정할 수 있다는 증선위 판단은 개별 기업의 특성과 자율성 보장에 초점을 맞춘 K-IFRS의 제정 취지에 반한다. ‘콜옵션의 경제적 실질’에 관한 회계학자들의 통설적 견해와도 상충된다. 

<편집자주>

△삼바는 2012년 바이오젠과 함께 조인트벤처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설립했다. 설립 당시 대표이사와 이사 5명 중 4명과 대표이사 선임권은 삼바가, 나머지 이사 1명의 선임권은 바이오젠이 각각 보유했다.

△바이오젠은 미래 일정 시점에 에피스 발행 주식을 최대 ‘50%-1주’까지 사들일 수 있는 콜옵션을 갖기로 삼바와 약정했다. 바이오젠은 2018년 6월 위 약정에 따라 콜옵션을 행사했다.

△설립 당시 삼바의 보유지분은 85%, 바이오젠은 15%에 불과했다. 에피스는 2014년까지 두 차례 유상증자를 실시했으며, 바이오젠은 모두 불참했다. 그 결과 삼바 보유지분 비율은 91.2%까지 올랐고, 바이오젠 보유 지분 비율은 8.8%까지 떨어졌다.

△바이오젠은 에피스 투자 후 매년 발행하는 사업보고서를 통해 ‘에피스에 대한 지배권은 삼성바이오가 행사한다’는 내용을 매년 미국 나스닥에 공시했다.

△삼성바이오는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에피스를 '단독지배' 하는 것으로 판단해, '연결회계'를 적용했다. 

△에피스는 2015년 9월과 12월,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바이오시밀러(복제약) 2종의 국내 시판허가를 식약처로부터 받았다. 회사가 개발한 ‘성분명 : 에타너셉트(오리지날 의약품 앤브렐)’ 시밀러는 2015년 9월, ‘성분명 : 인플릭시맵(오리지날 의악품 레미케이드)’ 시밀러는 그해 12월 각각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시판허가를 얻었다.

△콜옵션의 지배력은 ‘경제적 실질’이란 요건을 충족할 때 비로소 현실화된다. ‘경제적 실질’은 회계학상 ‘내가격’과 동일시된다. 여기서 말하는 ‘내가격’이란 당해 기업의 주식가격이 콜옵션의 행사가격보다 높은 경우를 말한다.

△삼바는 에피스 복제약의 식약처 시판 허가를 계기로 콜옵션 지배력이 현실화됐다고 판단, 2015 회계연도부터 에피스에 대한 회계처리를 변경했다. 이때부터 삼바는 에피스를 바이오젠과 ‘공동지배’하는 관계사로 보고, 연결회계가 아닌 지분법 회계를 적용했다.

△증선위는 삼바의 15년 재무제표 작성에 고의 분식 판단을 내렸다. 2012년부터 지분법 회계를 적용했어야 하며, 바이오젠 보유 에피스 콜옵션을 재무제표에 부채로 계상하지 않는 방법으로 4조5000억원 규모 분식을 범했다고 밝혔다. 

 

콜옵션 지배력 현실화, 사업 성과로 판단해야

바이오젠의 콜옵션 약정은 에피스 설립 시점 이뤄졌다. 법인 설립과 거의 동시에 콜옵션 약정이 체결됐음을 알 수 있다. 콜옵션 존재만으로 경제적 실질이란 행사 요건이 충족된다면, 에피스 설립 당시 주식가격이 콜옵션 행사가격보다 높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이는 성립할 수 없는 사실이다. 법인 설립시점 주식가격을 뜻하는 ‘액면가’가 콜옵션 행사가격보다 높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콜옵션은 그 권리를 보유한 자가 미리 정한 가격으로, 미래 일정 시점, 해당 기업 주식을 매입할 수 있는 권리이다. 그 행사가격은 당해 기업 주가 상승분과 시장 상황, 업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산정된다. 당연히 콜옵션 행사가격은 동 법인의 설립 시점 주식가격(액면가) 보다 높게 설정된다.

콜옵션 존재만으로 행사 요건을 충족했다는 증선위 판단에 대부분의 회계학 교수와 자본시장법 학자들이 고개를 가로젓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업계약서에 실현 불가능한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을 것이란 인식은 사실에 기초하지 않은 추론에 불과하다. 계약서에 실현 불가능한 내용이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란 추론에 기대, 콜옵션 존재만으로 경제적 실질을 인정할 수 있다는 증선위 판단은 논리법칙에 반한다.

콜옵션 지배력 현실화 내지 경제적 실질 여부는 문건의 존재나 그 내용의 신뢰도가 아니라, 실제 사업의 성공 여부를 살펴야 한다. 삼성바이오의 바이오시밀러 사업은 국내 식약처가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2종에 대해 시판허가를 내준 2015년 하반기에 이르러 비로소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증선위 “임상 1상 통과시 성공률 80%”... 10건 중 4건 실패 

증선위 일부 인사와 검찰은 콜옵션의 존재만으로 지배력이 현실화된다는 논리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에피스의 개발 동향을 제시하기도 한다. 에피스가 개발 복제약에 대해 식약처로부터 임상 1상 개시 승인을 받은 시기는 2013년이다. 증선위와 검찰은 이때부터 콜옵션 지배력이 현실화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바이오시밀러는 임상 1상 단계만 통과하면 성공률이 80%에 달하므로 사실상 개발 ‘완성’에 근접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증선위 판단을 옹호했다. 증선위와 검찰의 이같은 주장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

바이오시밀러가 신약에 비해 개발 성공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시밀러의 경우 임상 1상만 통과하면 성공률이 80%에 이른다는 주장은 상당히 과장됐다. 제약·바이오업계 국내외 논문과 관련 기사를 검색한 결과, 임상 1상을 통과한 바이오복제약 10건 중 4건은 개발에 실패했다. 바이오복제약의 개발 성공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이유로, 2013년 이후 바이오젠 보유 콜옵션 지배력 현실화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은 억지에 가깝다. 

A교수는 “증선위 측이 주신문에서 제시한 바이오시밀러 성공확률 수치는 출처가 불분명하고 과장된 것”이라는 삼바 변호인단 반대신문에 “객관적이고 신뢰성 있는 평가는 그 자료가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에 달려있고, 정보에 문제가 있다면 신뢰도 역시 떨어진다”고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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