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주총 '묻지마 반대표'... 국민연금, 이게 최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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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주총 '묻지마 반대표'... 국민연금, 이게 최선인가
  • 유경표 기자
  • 승인 2022.03.31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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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화'된 국민연금, 도넘은 '기업 길들이기' 논란
대기업 사내이사 선임건에 대부분 '반대표'
모호한 반대명분 내세워... 주주들 외면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국민연금 수탁자 책임 전문위원들 가운데 기업에 대한 이해가 턱없이 부족한 이들이 다수라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각자의 정치적 이해관계나 집단의 이익에 따라 투표권을 행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얼마 전 우연한 기회에 만난 국민연금 관계자는 최근 잇따라 열리고 있는 기업들의 정기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이 ‘묻지마’식 반대표를 행사하고 있는 배경에 대해 이 같이 털어놨다. 

국민연금은 자금 규모만 900조에 달하는 ‘큰손’이다.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거대 기금 운용사다. 국민들의 피땀 어린 노후자금을 관리하는 국민연금이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안목으로 운영되면 좋으련만, 의결권을 하나의 ‘권력’으로 삼아 기업을 길들이려 나서는 행태는 우려스럽기 짝이 없다. 

실제로 국민연금은 올해 3월 ‘슈퍼주총’ 시즌에 맞춰 잇따라 열리고 있는 주요 대기업의 정기주주총회에서 상당부분 ‘반대표’로 일관했다. SK 주총에서는 최태원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에 반대표를 던졌다. 기업가치 훼손과 주주권익 침해 이력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국민연금은 비슷한 이유를 내세워 SK이노베이션 주총에서도 장동현 부회장의 기타비상무이사 선임을 반대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LG화학 신학철 부회장, 삼성전자 경계현 DS부문장과 박학규 DX부문 경영지원실장, 효성 조현준 회장, 조현상 부회장 등의 사내이사 선임 안건에도 국민연금은 모두 반대로 일관했다.  

이들 기업들은 국민연금의 ‘딴지’에도 불구하고, 주주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이사 선임 안건을 통과시키는데 성공했다. 국민연금의 반기업적 주주권 행사가 일반 주주들의 정서와 겉돌고 있다는 반증이다. 

올해에도 국민연금에 ‘종이호랑이’라는 모멸적인 꼬리표가 따라붙게 된 것은 운용기금 규모나 지분 비중이 적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반대를 위반 반대을 반복하는 행태가 시장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 탓이 크다.  

우리나라 출산율은 급격한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급기야 0%대로 접어들었다. 해가 갈수록 부양해야 할 노인은 늘고 젊은세대는 줄어드는 역피라미드 인구 구조로 치닫고 있다. 국민연금 고갈시기도 불과 35년 후인 2057년 도래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지배적이다. 생존 기로에 선 지금의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그 피해는 국가적 재앙으로 번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확보한 기업 지분을 마치 ‘목줄’처럼 이리저리 휘두르는 징벌적 운용방식에서 벗어나, 선진화된 기금운용사로 거듭나야 할 때다.

국민연금과 정치권력과의 분리도 시급하다. 정부에 밉보일까 노심초사하는 기업의 입장에서 국민연금의 입김은 무시하기 어렵다. '시장경제'에는 ‘이념’을 개입시켜선 안된다. 정권의 성향이나 정치적 논리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현재의 기금운용 방식은 위험하다. 민간 기업의 자율경영 기조를 해치는 '경영 개입' 시도 역시 필요 최소한 수준으로 절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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