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人] "신발제조 1년서 한달로 단축... AI로 폐쇄적 공정 없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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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人] "신발제조 1년서 한달로 단축... AI로 폐쇄적 공정 없앴죠"
  • 배소라 기자
  • 승인 2022.02.04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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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제조 플랫폼 '크리스틴컴퍼니' 이민봉 대표
부산 신발 제조단지 부활 꿈꾸며 창업 도전
자체 디자이너슈즈 브랜드 '크리스틴' 출시
업체와 제조 공장 연결해 주는 플랫폼 개발
1년 걸리던 신발 제조 기간 1개월로 단축
제조 공장 살리기 위한 고가 전략 대성공
2년만에 매출 20억 달성... 올해 50억 목표
이민봉 크리스틴컴퍼니 대표. 사진=시장경제DB
이민봉 크리스틴컴퍼니 대표. 사진=시장경제DB

대학생 시절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창업에 뛰어들어 엑시트(자금 회수)까지 성공시켰다. 이후 대기업에 입사해 최연소 과장으로 승진하며 승승장구했다. 풍부한 현장 경험과 대기업에서 익힌 조직 관리 노하우는 창업의 중요한 자양분이 됐다. 안정적인 직장 대신 신발 시장을 선택한 그는 '부산 신발 제조단지 부활'을 꿈꾸며 오늘도 전진 중이다. 

자체 신발 브랜드 출시뿐 아니라, 신발 업체와 제조 공장을 연결해주는 서비스로 창업 2년 만에 매출 20억원을 달성했다. 지난해에는 네이버, 시리즈 벤처스, 부산연합기술지주 등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해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현재 200억원의 가치를 지닌 회사로 발돋움한 상태. 이런 추세라면 올해 50억원 이상 매출 달성이 예상된다. 이민봉 크리스틴컴퍼니 대표의 당찬 창업 도전기다. 

이민봉 크리스틴컴퍼니 대표. 사진=시장경제DB
이민봉 크리스틴컴퍼니 대표. 사진=시장경제DB

 

대학시절부터 학비 벌려 도전한 창업 

장남인 이 대표는 어릴 적부터 신발 자재상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부산의 신발 제조단지를 드나들었다. "아버지를 따라 다닌 신발 공장에서 '나중에 커서 신발 브랜드를 만들어야겠다'는 꿈을 키웠어요. 그리고 점점 나이가 들어 보는 눈이 달라지면서 구체화됐어요."  

대학 시절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창업에 뛰어들었다. "학비를 벌기 위해 처음에는 여러가지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아르바이트만으로는 학비를 충당할 수 없었어요. 그때 떠오른 게 창업이었어요."

그가 살던 동네에는 작은 식당들이 많았다. 식당 주인 아주머니들은 식재료를 구하기 위해 김해에서 부산까지 새벽시장을 나갔다. "'수수료를 조금만 받고 장보기 대행을 해주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초기에는 몇 분 사장님들께 요청했더니 좋아하셨어요. 열심히 하다 보니 나중에 20곳 식당과 거래하게 됐어요. 그때 1년 안에 4년치 학비와 생활비까지 다 벌었어요."

첫 창업에 성공한 그는 군대를 다녀온 뒤 또 다시 창업에 도전했다. 이번 사업 아이템은 '두부'였다. "학교에서 두부를 직접 만드는 친구를 만났어요. 그 친구에게 비즈니스 모델을 제가 만들어보겠다고 해서 시작했어요." 두부는 학교에 있는 시설에서 생산했다. 당시 두부 한 모 가격은 500원. 이 가격으로는 비즈니스 모델이 될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몸에 좋은 버섯 균사체를 넣어 4500원에 팔았다. 배달도 직접 했다.

이 대표는 비싸지만 이 두부를 사게 하려면 특별한 서비스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두부를 주문하면 우유처럼 새벽에 바로 배송했어요." 고가 마케팅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경남(진주·사천) 지역에 두부를 직접 배달하며 동네에 입소문이 퍼졌고, 갤러리아백화점에 정식으로 입점하게 됐다.

이민봉 크리스틴컴퍼니 대표. 사진=시장경제DB
이민봉 크리스틴컴퍼니 대표. 사진=시장경제DB

 

남다른 경험으로 메리츠증권, LG유플러스서 입사 제안

회사가 조금씩 커지자 이 대표는 금융 재무 관련 지식의 필요성을 느꼈다. 금융 재무 공부를 하다 보니 자격증이 늘어났고, 대학교 4학년 1학기가 끝날 무렵 메리츠증권에 합격했다. 하지만 그는 입사한 지 1년도 안 돼서 돌연 퇴사했다. "증권사는 저랑 안 맞더라고요. 다른 사람의 돈을 통해서 실물이 없는 주식을 투자하는 건 제가 추구하는 것과 맞지 않았어요. 그때부터 다시 꿈에 대해서 생각했어요."

이 대표는 새로운 걸 도전해 보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금융회사를 나왔다. "제가 리니지 순위 탑에 들어갈 정도로 온라인 게임을 좋아했어요. 하지만 당시 게임 규제에 대한 여론이 형성되면서 게임을 바라보는 시선이 좋지 않았어요. 그래서 '게임 산업에 전환점을 만들 수 있는 캠페인을 만들어보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게임의 건전성을 알리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부산에서 서울까지 캠페인을 진행했다. 게임 포털 사이트에 기획안과 캠페인 내용을 매일 연재했다. 8일 만에 서울에 도착하자 NC소프트와 LG유플러스에서 입사 제안이 동시에 들어왔다. 고심끝에 LG유플러스를 선택했다. 

LG유플러스 전략팀에서 일하면서도 신발에 대한 꿈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무턱대고 뛰어들지는 않았다. 퇴근 후 원하는 디자인과 브랜드를 기획하며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과장 승진을 앞둔 어느날 사표를 냈다.

"회사에서 아무리 성과가 좋아도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컸던 것 같아요. 힘들어도 후회하지 않을 일을 하고 싶었어요. 더 늦기 전에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었던 '신발 사업'을 하겠다고 결심하게 됐죠."

이민봉 크리스틴컴퍼니 대표. 사진=시장경제DB
이민봉 크리스틴컴퍼니 대표. 사진=시장경제DB

 

폐쇄적인 구조 바꾸자 신발 제조기간 1년서 한달로 단축

5년간 직장 생활을 하면서 '내 사업'에 대한 열망을 키웠던 이 대표는 브랜드 창업과 동시에 신발 산업이 폐쇄적인 구조라는 문제점을 알 게 됐다. 끈부터 밑창까지 100여 가지에 달하는 신발 제조공정은 각 단계를 중개업체(에이전시)가 일일이 개별 공장에 맡기는 방식이 고착화돼 있었다. 한 제품이 출시되기까지 1년 이상 걸리는 데다 재고 리스크도 온전히 업체가 떠안아야 했다.

이 대표는 이 폐쇄적인 산업 구조를 없애겠다고 목표를 세웠다. "대기업도 새 디자인 제품 제조에 1년이 걸리고, 자사 신발이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정확히 모르더라고요. 에이전시를 통하면 똑같은 신발도 매번 다른 공장에서 나와요. 품질도 매번 달라져요." 

사실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이 대표 한 명만이 아니었다. 30년동안 고착화된 산업인 만큼 폐쇄된 구조에 부딪혀 제조기간 단축 시도는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 사업화하는 과정에서 이 대표의 개인기가 빛을 발했다. 바로 풍부한 현장 경험과 빠른 실행력. 오랜 고심 끝에 이 대표는 바닥부터 시작했다. 친동생과 함께 서울로 상경해 동대문 도매시장에서 도매부터 배웠다. 물건을 대량으로 가져와 팔면서 온라인 유통을 습득했다. 

창업 초창기에는 브랜드가 전혀 알려지지 않은 데다 신발 공장 사장님들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았다. "신발 공장에 찾아가도 아예 안 만나주는 공장 사장님들이 대부분이었어요. '신발 산업을 살리고 싶다'는 열정을 보여주기 위해 매일 찾아가 2~3시간씩 서 있었어요. 1년이 지나니 신발 공장 사장님들 사이에서 '독한 놈들'이라고 소문이 났어요."

오랜 기간 문을 두드리고 직접 사장님을 찾아 뵌 끝에 전체 433곳 가운데 180여곳에서 부자재·제조공장과 협력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이렇게 발로 뛰어 만든 공장 데이터베이스(DB)를 토대로 AI가 공정별로 적합한 공장에 자동으로 맡기는 플랫폼을 구축했다. 크리스틴컴퍼니만의 기술 경쟁력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에이전시 등 복잡한 과정을 거칠 필요 없이 온라인으로 업로드만 하면 자동으로 공장을 연결해 주는 온라인 플랫폼을 만들었어요. 후발주자들이 조금 더 편하게 일을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든거죠. 브랜드 회사에서만 수수료를 받고 공장에서는 안 받아요. 보통 신발 브랜드는 에이전시 3~5곳에 수수료를 내는데, 이를 절감할 수 있게 됐죠. 뿐만 아니라 품질도 일정하고, 제조 공정 과정도 투명하게 볼 수 있어요. 특히 규모가 작은 공장들도 살아날 수 있는 구조예요."

에이전시에 주는 수수료 부담을 줄일 수 있어 신생 신발업체는 물론 대형 신발업체에서도 호응도가 높다. 이 대표는 플랫폼 서비스를 올해 안에 상용화한다는 계획이다. 

제조공정 단축에 성공한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속도를 더 내기 위해 디자인에도 AI를 접목하기로 한 것이다. AI가 포털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키워드와 해시태그로 신발업계 유행을 분석한다. 모든 공정을 직접 섭외한 곳에 맡기면서 1년이 걸리던 새 디자인 제품 제조 기간이 한 달로 줄었다. 
 

롯데 신동빈 회장 지시로 에비뉴엘 입점

창업 초기부터 페이스북으로 '크리스틴' 브랜드를 알렸던 것이 신의 한 수였다. 페이스북 게시글을 본 롯데백화점 담당자가 에비뉴엘 광장에서 행사를 열자고 제안한 것. 

"에비뉴엘 광장 80평 전체를 빌려서 단독으로 행사를 열었어요. 행사 첫 날 문을 열기 전부터 고객들이 줄 서 있었어요. 유튜버 친구들을 동원해 홈쇼핑 방식으로 진행하니 반응이 뜨거웠어요. 롯데월드 타워에 계시던 신동빈 롯데 회장님이 이 소식을 듣고 내려오셨어요. 신동빈 회장님이 직접 보고 임원들에게 '바로 입점 시켜라'라고 해서 에비뉴엘에 입점하게 됐어요. 에비뉴엘에 입점하면서 브랜드도 성장점을 찾았어요."

이 대표의 가장 큰 지향점은 신발 제조 공장과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사업 구상을 하면서 부산의 신발 제조 시장을 살펴봤던 이 대표는 느끼는 바가 많았다고 한다. 가격경쟁력이 동남아·중국에 밀려 가격을 계속 낮추고, 수주를 따도 남는 게 없게 된 현실이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처음부터 저가가 아닌 고가 마케팅을 선택했다. 신발 한 켤레를 8만원 정도에 팔았다. 품질을 높이고, 그에 맞는 가격을 받았다. 신발 제조 공장과 상생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대부분 신발 창은 외국산을 많이 사용해요. 그러면 볼은 적고 길이는 긴 게 많아요. 저희는 아예 한국인의 발에 맞춰 길이를 줄이면서 발볼을 넓힌 금형을 자체 제작해요." 

그 결과 크리스틴컴퍼니는 지난해 20억원의 최대매출을 기록했다. 지난해 네이버 등에서 5억5000만원의 투자도 이끌어냈다. 기업가치는 200억원 수준이다. 그는 올해 매출을 50억원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세 번의 창업으로 연쇄 창업가(Serial Entrepreneur) 타이틀을 얻은 이 대표는 한국 신발 제조 산업을 살리는 게 목표다.

"세상에 없는 '업(業)'을 만들어야 스타트업이라고 생각하지만, 세상에서 사라지는 업을 살리는 것도 스타트업이죠. 어린 시절 늘 활기 넘쳤던 부산 신발 제조단지를 다시 살려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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