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인사이트] 불의(不義)는 참아도 '불익(不益)'은 못참는 카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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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인사이트] 불의(不義)는 참아도 '불익(不益)'은 못참는 카카오
  • 유경표 기자
  • 승인 2021.10.29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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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엔터, 웹툰 '포도만화' CP 사전검열 논란
'참고사항' 이라지만 작가에겐 '검열 가이드라인'  
中 '역사왜곡' 자행... '인권·역사' 침묵 강요 말아야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로고.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로고.

기업의 존재 이유는 ‘이윤창출’에 있다. 양질의 고용을 창출하고 경제가 활발히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동력은 기업에서 나온다. 때문에 기업은 이윤창출 극대화를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경쟁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기업이 사회에 기여하는 바는 매우 크다. 다만 이윤창출이 목적이라 해도, 넘어서는 안될 선이라는 게 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지난달 국내 CP사들에게 ‘중국 부적절한 발언 자율 심의 가이드’를 전달한 행위의 적절성을 높고 뒷말이 무성하다. '선을 넘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는 여론이 만만치 않다. 우리나라의 대표 IT기업이자, 콘텐츠 기업인 카카오가 ‘돈’을 위해 중국의 눈치를 보고 스스로 납작 엎드린 것과 진배없다는 날선 비판도 나온다. 

카카오엔터는 중국에서 온라인 웹툰 플랫폼 '포도만화'를 오픈하는 시점에 맞춰 ‘중국 자율 심의 가이드’를 각 CP사에 배포했다. 포도만화는 카카오가 중국 거대 IT기업 텐센트와 손잡고 중국에 런칭한 웹툰 서비스이다. 

해당 가이드에는 대만, 홍콩, 티베트 등의 독립 지지나 ‘동북공정’으로 대표되는 한중 역사분쟁, 심지어는 한복의 원류 논쟁 등과 관련된 언급 자체를 금하는 내용이 담겼다. 중국 정부와 중국인들이 불편해하는 현안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침묵할 것'을 CP사들에게 강요한 셈이다. 

가이드 주요 내용은 중국 정부가 제정한 인터넷출판서비스관리규정 제24조와 흡사하다. 국내 작가들의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는커녕 중국인들의 심기를 우선 고려해 자체 검열에 나설 것을 사실상 종용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중국 부적절한 자율 심의 가이드'.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화면 캡처.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중국 부적절한 자율 심의 가이드'.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화면 캡처.

 

카카오엔터, 中共 입맛 맞춰 '사전 검열' 정당화

각 나라마다 문화와 정서, 적용되는 법률이 다르다. 콘텐츠를 서비스하는 기업의 입장에서 오해나 논란을 일으킬 수 있는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노력을 기울일 수는 있다. 이는 회사가 ‘필터링’을 통해 충분히 관리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사안을 바라보더라도, ‘사전 검열’과 다름없는 수준의 가이드라인을 내려 보낸 행위는 도가 지나치다. 무엇보다 문화적·역사적으로 긴밀하게 엮여있는 중국이기에, 콘텐츠를 통해 우리의 목소리를 내는데 주저해선 안 될 일이다. 

중국은 우리나라에 대한 역사왜곡을 자행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최근 불거진 한복 논쟁이 대표적이다. 한복이 중국의 ‘한푸’를 베낀 것이라며 근거없는 주장을 펴고 있다. 여기서 한 술 더떠 중국의 한 드라마에서는 한복을 시녀들이나 입는 옷으로 표현해 우리 국민의 분노게이지를 끌어올렸다.   

카카오엔터가 CP사들에 배포한 가이드라인에 맞춘다면 고구려도 작품의 배경으로 쓸 수 없게 된다. 중국은 고구려를 당나라의 일개 지방정권으로 격하시킨 것은 물론이고 같은 내용을 어린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나아가 ‘중국인을 모욕해선 안된다’는 조항을 액면 그대로 적용하면 중국인은 악역으로 등장할 수도 없고, 등장해서도 안된다는 결론에 이른다.

특히 ‘민족의 단결을 파괴하거나 민족 감정, 풍속, 관습을 해치는 행위’를 금지하는 조항의 경우, 표현이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모호해 제한의 범위가 무한대로 확장될 수 있다. 중국 공산당의 입맛대로 가위질을 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초법적 가이드라인이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참고사항' 이라는 카카오엔터, 작가 입장에선 '검열 가이드라인'  

카카오엔터의 답변을 살피면, 위 가이드라인의 성격을 '참고사항' 수준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회사 관계자는 그 소속 직원이 일부 CP사에 위 가이드라인을 이메일로 전달한 사실을 인정하면서 작성 경위를 이렇게 밝혔다. 

"웹툰이나 게임 등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에 대한 중국 정부의 규제가 상당히 강도 높게 이뤄지고 있어 작가나 콘텐츠 제작사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참고사항을 안내했다."

그러면서 "중국어를 직역해 전달하다보니 그 내용을 오해할 문구가 있다고 판단, CP사들에 연락해 내용을 정정했다"고 덧붙였다. 

위 가이드를 카카오엔터 플랫폼을 통해 작품을 서비스하는 작가와 CP사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전혀 다른 그림이 나온다. 동 문건이 '권고'나 '참고사항'의 형식을 갖추고 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중국 정부의 입장을 전달했으니 알아서 거르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받은 것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참고사항을 안내한 것에 불과하므로 문제될 것이 없다'는 취지의 카카오엔터 측 행태는 이런 점에서 순순히 납득하기 어렵다. 

 

'꼬리자르기' 아닌, 책임있는 기업 모습 보여야

논란이 확산되자, 카카오엔터가 내놓은 추가 해명은 더욱 기가 막히다. 일개 직원의 ‘실수’에서 벌어진 일이라며 ‘꼬리’를 자르는 모습으로 일관하고 있어서다. 회사 내부의 사정이기에 해당 가이드라인을 텐센트측에서 내려보낸 것인지, 아니면 카카오엔터 자체적으로 마련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책임 있는 기업이라면 잘못을 인정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는 것이 먼저다. 카카오엔터의 대응은 규모와 지위에 걸맞지 않게 비굴하고 비겁했다. 무엇보다 중국인의 기준에 맞게 제단된 작품을 과연 K-콘텐츠라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의 대표 자동차 기업 르노와 푸조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나치가 프랑스를 점령했을 때, 르노는 나치에 굴복하고 독일군 군수물자를 생산하는 쉬운 길을 갔다. 반면, 푸조는 나치에 대항해 스스로 공장을 폭파시키고 레지스탕스를 지원하는 가시밭길을 선택했다. 

이후 두 기업의 운명은 극명하게 갈렸다. 르노의 생산시설은 연합군의 집중 폭격을 받았다. 남은 것은 잿더미가 된 공장과 '부역자'라는 오명이었다. 푸조는 ‘나치에 저항한 기업’이라는 명예로운 타이틀을 얻게 됐고, 지금까지도 프랑스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받고 있다. 

기업으로서 이윤창출보다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결코 잊어선 안 된다는 점을 역사는 증언하고 있다. '불의(不義)는 참아도 불익(不益)은 못참는 친중기업'이라는 꼬리표가 붙을 것인지 여부는 카카오엔터의 선택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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