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경pick] 이사회 개최일 변경 없었다... 무너진 '이재용 위한 시세조정' 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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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pick] 이사회 개최일 변경 없었다... 무너진 '이재용 위한 시세조정' 논리
  • 유경표 기자
  • 승인 2021.09.05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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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자본시장법위반 등 혐의 공판' 중간 정리
변곡점 된 13차 공판... 前미전실 직원, 증인신문
檢 "이재용에게 가장 유리한 시점 선택해 합병"
합병비율 산정 '기준 시점'은 '이사회 개최일'
시세조종 맞다면, '이사회 일시' 변경 드러나야
증인 이메일 통해 '이사회 개최일' 변동없음 확인
檢 주장 기초 무너져... 증인 "주가 예측은 신의 영역"

[편집자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 전현직 임직원 10명에 대한 부당거래·시세조종, 분식회계 등 혐의 공판이 지난해 10월 22일 1차 공판준비기일을 시작으로 약 10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사건을 심리 중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5-2부(박정제·박사랑·권성수 부장판사)는 매주 한 차례씩 재판을 여는 강행군을 이어가고 있다.

검찰은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이른바 ‘프로젝트G’ 문건을 증인신문마다 들이밀며 시세조종과 분식회계 등 범행이 이 부회장의 사전 묵인 내지 승인 아래 진행됐음을 입증하는데 역량을 집중했다. 이 부회장 그룹 지배력 강화와 경영권 조기 승계를 위한 핵심 플랜이 동 문건에 담겨 있었고, 삼성 미래전략실 주도로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는 것이 검찰 공소사실의 요지이다. 그러나 공판 과정에서는 이 같은 검찰 시각에 의문이 제기되는 장면이 잇따라 연출됐다.  

지금까지의 증인신문 과정에서 주목할 부분은 이 부회장 혐의의 전제가 되는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분식회계 등의 의혹이 실재했다고 판단할 명백한 진술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검찰의 시세조종 혐의 입증은 증인신문 과정에서 번번히 벽에 부딪히는 모습을 보였다. 

이 점에 대한 입증시도가 지금처럼 답보상태를 면치 못한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검찰의 부담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시장경제>는 이 사건 공판 과정에서 드러난 공판 핵심 쟁점을 아래와 같이 정리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시장경제DB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시장경제DB

 

檢 시세조종 혐의 입증, 두 가지 전제조건 충족돼야 

이 사건 검찰 공소사실 핵심 혐의인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당시 시세조종' 입증을 위해선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전제조건 충족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나는 검찰의 주장처럼 이재용 부회장에게 가장 유리한 시점을 선택해 합병이 추진됐음을 입증해야 한다. 자본시장법상 합병비율 산정의 '기준 시점'은 합병안을 의결한 '이사회 개최일'이다. 따라서 검찰의 주장이 설득력을 갖기 위해선 삼성 측이 이사회 개최일을 앞당기거나 혹은 늘리는 등 일정을 임의로 변경한 사실이 존재해야 한다.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시점을 선택해 합병을 추진했다'는 주장은 '물산 주가는 낮추고, 모직 주가는 높이는 주가 조작이 범해졌다'는 공소사실과 맞닿아 있다. 이 부회장에게 적용된 업무상 배임 혐의도 위 주장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두 번째는 자본시장법이 정한 기준과 절차에 반해 합병비율이 산정됐음을 입증해야 한다. 합병비율 산정 공식은 동 법 시행령이 매우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할인이나 할증은 기본적으로 허용되지 않으며 그것이 불가피한 특별한 사정이 존재하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궁극적으로 검찰이 말하는 시세조종 혐의가 인정을 받으려면,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비율은 법이 정한 기준과 다르게 산정됐어야 하며, 그 사유 또한 부당함을 입증해야 한다. 

위 두 가지 점에 대한 입증 여부는 이 사건 검찰의 공소유지 가능성과 직결된다. 둘 중 하나라도 입증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는다면 분식회계나 업무상 배임 등 다른 혐의에 대한 유죄 인정도 기대하기 어렵다. 검찰이 그린 이 사건 혐의 밑그림을 보면 모직-물산 합병과정에서의 시세조종은 시간적으로 가장 앞선 이벤트이다. 모직-물산 합병 당시 시세조종은 '선행사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외부감사법 위반)나 이 부회장의 업무상 배임 혐의는 '후행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지난달 26일 열린 이 사건 13차 공판은 중요한 변곡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법정에서는 전 삼성 미래전략실 파견직원 A에 대한 변호인 반대신문이 진행됐다. A는 삼성증권 IB팀 직원으로 근무 중 미전실로 파견 발령을 받아 합류했다. 그는 미전실에서 모직-물산 합병, 삼성바이오 상장 등의 업무에 관여했다. A는 앞선 공판 검찰 주신문에서 모직-물산 합병 안건을, '발생할 수도 있는 여러 계열사 현안 중 하나'로 인식하고 사전 검토 차원에서 내용을 살폈다고 증언했다.
 

삼성 측 이사회 개최일자 '고정'... 檢 공소사실 무력화 

A에 대한 이날 반대신문이 중요한 이유는 그가 미전실 임직원들과 주고 받은 이메일 등 검찰이 이 사건 증거로 제출한 업무 이메일 내용에서, 모직-물산 합병을 의결한 '이사회 개최일'을 변경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에게 가장 유리한 시점을 선택해 합병을 추진했다는 검찰 공소사실을 무력화할 수 있는 중대사안이다. 다음은 이 부분 변호인 반대신문 질의응답 발췌. 

변호인 : 증인이 보낸 이메일을 보면 '(합병 의결) 이사회 일자'를 고정시켜 놨습니다. 이거 보면 제일모직이 유리한 합병비율을 도모하기 위해 이사회 (개최)일자 앞당겼다는 검찰 주장은 맞지 않는 듯 보이는데.

증인 : 네. 그렇게 검토한 적 없습니다.

변호인 : 증인은 2015년 3월 23일 이같이 이사회 일정 고정해놓고 주총 일정 앞당기는걸 논의했죠. 이런 사정 보면 장내 주가를 미리 알고 특정인에게 이익을 줄 목적으로 (합병)이사회 일정 조정하려는 의도 전혀 없던 걸로 보이는데 어떤가요?

증인 : 장내 주가는 예측 불가능할 뿐더러 그걸 염두에 두고 (이사회) 일정을 만들수도 없을 거 같고, 그런 취지에서 (합병 의결 이사회 일자 변경을) 검토한 적 없습니다.

변호인 : 지금 증인이 말한 내용도 그렇고 이메일을 봐도 증인이 스스로 회사별 주가 향방 알 수 없는 상황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장차 삼성물산, 제일모직 주가가 어떻게 될지 미리 알고, 제일모직 (대주주인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합병비율을 만들 목적으로 이사회 일자를 조정하는 것이 가능한가요?

증인 :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위 진술은 [삼성 측이 제일모직 대주주였던 이 부회장에게 가장 유리한 시점을 선택해 합병을 추진했다]는 검찰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증명한다. 삼성 측은 모직-물산 합병을 의결한 이사회 개최 일자는 '고정'해 놓고, 주주총회 일정만을 앞당겼다. 검찰이 사실관계를 오판했음을 강력하게 시사하는 대목이다.

삼성 측이 임으로 이사회 개최일을 변경하지 않았음이 확인된 이상, '물산 주가는 낮추고 모직 주가는 높이기 위한 주가 조작이 있었다'는 취지의 공소사실은 설 자리를 잃는다. '물산 주가를 고의로 낮춰 구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쳤다'는 취지의 검찰 주장 역시 마찬가지다. 이 부회장 업무상 배임 혐의 입증에도 험로가 예상된다.

A는 "주가는 예측하는 것 자체가 신의 영역"이라며 '일자별 주가를 예측한 뒤 합병시점을 선택, 시세를 조종했다'는 검찰 논리 전개에 동의할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모직-물산 합병과정, 당국이 검증... 합병비율 할인·할증 없어

15년 모직-물산 합병 당시 합병비율 할인이나 할증 사실이 없었으며, 특히 두 기업의 합병비율은 금융위원회의 검토를 거쳐 이뤄졌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삼성이 금융위에 낸 증권신고서에는 모직과 물산의 합병가액, 산출근거가 모두 기재됐다.

자본시장법 시행령은 상장법인 합병의 절차와 기준을 명시하고 있다. 상장법인의 경우 합병가액은 최근 주가에 의해서만 산정하도록 돼 있다. '기준 주가'는 최근 거래기간 내 거래 종가를 가중평균해 산정한다. 구체적으로는 최근 일의 종가, 최근 1주일간 평균 종가, 최근 1개월간 가중평균 종가를 산술평균한 값이다(동 시행령 176조의5 제1항 제1호). 

자본시장법에 의해 합병비율이 정해졌다면, ‘할증’이 적용됐는지 여부도 살펴야 한다. 위 시행령은 기존 주가의 30%의 범위에서 합병비율 할인·할증이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할증을 적용할 경우에는 증권신고서에 합리적인 사유를 기재해야 하고, 소명이 부족하면 증권신고서 자체가 반려될 수 있다. 납득할 만한 이유가 없는 상황에서 할증을 적용했다면 합병 자체가 무산될 수 있다는 뜻이다. 

다음은 이 부분 A의 변호인 반대신문 질의응답. 

변호인 : 2015년 6월 1일자 법무법인 작성 '합병비율 관련 검토 의견서' 제시합니다. 자본시장법은 상장법인의 경우, 합병가액은 시장가를 기준으로 해서만 정하도록 돼 있고, 이를 위반한 경우 제재조치도 규정하고 있어요. 합병비율 관련 규정이 엄격합니다. 물산은 주권 상장법인이죠. 합병 위해서는 반드시 자본시장법이 정한 규정에 따라 합병비율을 정해야 합니다. 본 사건 보통주 합병비율은 자본시장법 시행령상 '기준 시가'를 적용하게 돼 있고, 그 밖의 다른 방법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증인이 검토할 때 자본시장법 전문가로부터, 앞서 본 내용 같은 의견서 받은 상황이었는데. 주가를 기준으로 산정된 합병비율에 문제 있다고 판단했나요?

증인 : 자본시장법상 실제 합병했을 때 그런 부분은 주가를 기준으로 해야 된다는 거 당연하다 생각했습니다. 문제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변호인 : 합병 추진키로 이사회 결의하면 금융위에 '합병비율 증권신고서' 제출해야 하죠.

증인 : 네.
 
변호인 : 금융위가 증권신고서 검토 후 문제 사안 보완 요구하면 해당 부분 정정해 다시 제출하죠. 

증인 : 맞습니다. 

변호인 : 이런 과정이 몇 차례 반복된 후에 증권신고서가 최종 수리돼죠? 

증인 : 네.

변호인 : 합병관련 증권신고서에는 합병가액과 산출근거 기재하죠?

증인 : 네.

변호인 : 주가를 기준으로 합병비율 정해진 경우, 최근 1개월 주가 평균, 최근 1주일 주가 평균, 최근의 주가(종가) 얼마인지 밝히고, 이를 기초로 일종의 계산과정 기재하면 되죠?

증인 : 네.

변호인 : '이사회 결의일'을 기준으로 해서 그 직전 거래일, 그 직전 일주일, 그 직전 한달 동안의 주가를 기준으로 합병비율 정해지죠? 

증인 : 네.

변호인 : 반면 합병비을을 할인이나 할증할 경우에는 그 사유가 뭔지 밝혀야죠?

증인 : 네.

변호인 : 할인이나 할증의 경우 증권신고서에 사유를 기재해야 하고, 그 사유가 시장에 형성된 기업가치의 객관적 지표라고 할 수 있는 주가를 배제하고, 할인이나 할증할만한 합리적 사유 아닌 경우 금융위원회가 사유 보완을 명령하죠? 그래도 소명이 안되면 신고서 수리를 거부할 걸로 보이는데 어떤가요? 

증인 : 맞습니다. 할인이나 할증을 할 만한 합리적 사유가 없으면 신고서 수리가 안되고, 그러면 합병할 수 없는 리스크가 존재합니다.

변호인 : 결국 금융위가 충분히 수긍할만한 합리적 사유, 즉 주가가 조작됐다고 인정할 만한 특별한 사유가 아니면 현실적으로 할인이나 할증 어려운데 맞나요?

증인 : 맞습니다. 할인이나 할증을 하기 위해선 천재지변과 같은 합리적 이유가 있음이 검증되고, 금융감독원에서도 수리가 돼야 합니다. 

A에 대한 위 반대신문은 당시 금융당국이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비율 산정 과정과 결과를 엄격한 잣대로 검증했음을 방증한다. 합병비율 사정의 기준 시점이 되는 이사회 개최일이 '고정'됐다는 사실, 당시 금융당국이 합병비율의 산정과 그 결과를 철저하게 검증했다는 사실, 합병비율 할증이나 할인은 없었다는 사실 등은 검찰 공소사실에 대한 유력한 탄핵 근거라고 할 수 있다.
 

사진=시장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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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물산 주주들, 합병으로 손해?... 합병 후 신용등급 2단계 상승 

합병이 옛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부당한 손해를 입혔다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 이 사건 재판부에 제출된 증권사 보고서들은 '양사 합병이 물산에 호재로 작용할 것'이란 전망을 담고 있다. 2015년 5월 26일 양사 합병 사실 발표 직후, 삼성물산 주가는 상한가를 기록했다. 

합병 후 삼성물산의 영업이익은 지속적으로 증가했고, 부채비율도 줄었다. 국내 신용등급도 2단계 상승했다.

변호인단이 지난 공판에서 제시한 그해 5월 삼성물산 공시자료와 동사의 임시이사회 안건자료, 합병TF가 작성한 내부 보고서는 합병목적 및 기대효과로 ▲포트폴리오 다각화 ▲신성장 동력 확보 ▲양사 통합운영으로 효율성 제고 ▲해외 진출 가속화 등을 공통적으로 꼽았다. 핵심 경영진에게 보고되는 내부문건이 '사업 시너지 효과'를 강조했다는 사실은, 합병을 '이 부회장 그룹 지배력 강화를 위한 수단'으로 인식하는 검찰 입장에서 달갑지 않은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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