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이재용 없다고 투자 못하나' 란 무지(無知)한 소리
상태바
[기자수첩] '이재용 없다고 투자 못하나' 란 무지(無知)한 소리
  • 유경표 기자
  • 승인 2021.07.25 18: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재용 수감 6개월... '광복절 사면' 필요한 이유
대만TSMC 美인텔 '공세적 투자', 위기감 고조
삼성 투자지연, 파운드리 신규 입지도 오락가락
한국 기업 '이사회' 아닌 '오너 중심' 전통 뚜렷
방향 설정·미래 먹거리 발굴... 총수역할론 재조명
광복절 사면, 靑으로 넘어간 공... 失期하면 피해는 기업과 국민 몫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시장경제DB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시장경제DB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광복절 가석방 심사 대상자 명단에 올랐다는 소식이 들린다. 법무부가 전국 교정시설로부터 8.15 광복절 가석방 예비심사 대상자 명단을 받았으며, 다음달 초 가석방심사위원회를 열어 최종 가석방 대상자를 선정한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은 올해 1월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 6월을 선고 받았다. 이 부회장 측은 파기심 재판부의 제안을 받아들여 외부전문가들로 구성된 삼성준법감시위원회를 출범시키고, 그룹 핵심 계열사들의 준법감시제도를 혁신적으로 개선하는 등 경영 투명성 확보를 위해 적극적 행보를 보였으나, 재판부는 삼성준법위를 양형 판단의 대상으로 고려하겠다는 입장을 번복했다. 이 부회장에 대한 재판부의 실형 선고와 관련해서는 법조계 안팎에서 재판부의 말 바꾸기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여권 내부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정부는 조만간 단행될 8.15 광복절 특사명단에 이 부회장을 포함시키는 방안을 전향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지난 몇 년간 국가경제는 거대한 변화와 도전에 직면해왔다. 예고 없이 덮친 코로나 팬데믹이 18개월 넘게 이어지고 있고,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은 더욱 심화됐다. 이 같은 글로벌 파고 속에서 이 부회장의 부재는 삼성과 우리 경제 전반에 상당한 손해로 작용했다.

파운드리 시장 세계 1위 TSMC, 미국 반도체 산업을 상징하는 인텔 등이 역대급 투자와 기업인수합병 소식을 전하고 있는데도 삼성의 행보는 무겁다. 올해 초 삼성은 최대 170억달러(약 18조8000억원)를 들여 미국에 파운드리 반도체 생산라인 추가 구축 계획을 밝혔으나 진전된 새 소식은 좀처럼 들리지 않고 있다. 경쟁사들이 활기찬 날개짓을 하는 동안 삼성은 이를 지켜만 보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시장경제DB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시장경제DB

 

서구과 다른 기업 문화...
오너 경영 반대해도 역할 폄훼는 사실 왜곡
    

삼성의 투자 지연은 오너의 부재 탓이 크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반기업 성향 일부 경제시민단체와 특정매체는 이같은 분석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으나, 이른바 '재벌'에 대한 학문적 연구를 오랫동안 수행한 학계 전문가들은 "삼성의 투자 지연은 오너의 부재와 관련이 깊다"는 관측에 대부분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200년 역사에 걸쳐 '이사회 중심 경영'이 뿌리를 내린 미국과 달리 한국 재계와 산업계는 '오너 중심 경영'의 전통 속에서 발전을 거듭했다. 오너 경영에 대한 당부 의견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그 실체를 외면하는 건 현실 부정이다. 

한국 기업에서 오너는 단순히 군림하는 총수가 아니다. 한국의 대기업집단 총수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기업의 방향 설정과 미래 먹거리 발굴 등 전략적 판단을 책임지는 당사자는 전문경영인이 아닌 총수이다. 대규모 인수합병, 사업구조 개편, 경쟁기업과의 파격적 제휴, 글로벌 핵심인재 영입 등 기업의 명운을 바꿀 '결단' 역시 총수의 몫이다.

전문경영인은 눈 앞에 놓인 실적과 숫자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단기간의 실적으로 경영 능력을 평가받는 전문경영인에게 리스크를 감수한 공격적 투자와 모험적 사업구조 개편을 기대하는 건 무리이다.

총수가 부재한 대기업집단이 예정된 투자 계획을 뒤로 미루거나 인수합병 시기를 조정하는 이유도 한국 기업만의 고유한 문화에서 비롯된다.

'이사회가 있는데 총수가 없다고 투자를 못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일부 반기업 성향 언론과 시민단체의 외침이 재계는 물론이고 경영학계에서 공감을 얻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부회장 수감으로 반도체 '초격차' 표류... 경영 복귀토록 '사면' 검토해야

이 부회장이 경영 일선을 지키던 2019년 삼성은 '‘반도체비전 2030’을 발표했다. 10년간 133조원을 투자해 반도체 분야에서 ‘초격차’를 실현한다는 내용이 골자였다. 세계 1위를 수성하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를 비롯해, 시스템반도체와 파운드리 분야까지 아우르는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올해 들어 삼성은 ‘반도체 비전2030’의 규모를 더욱 확대했다. 133조원에 38조원을 더 얹어 투자 규모를 171조원까지 늘려 잡았다. 이 부회장이 그룹의 명운을 걸고 발표한 이 프로젝트는 적어도 지금까지는 밑그림으로만 존재한다. 실천을 담보할 이 부회장이 자리를 비우면서 프로젝트 추진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전경. 사진=시장경제DB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전경. 사진=시장경제DB

삼성이 제자리걸음을 걷는 사이 파운드리 분야 최대 라이벌인 TSMC는 삼성과의 격차를 빠른 속도로 벌리고 있다. ‘반도체 비전2030’이 발표될 당시인 2019년만 하더라도 삼성전자와 TSMC의 시가총액은 엇비슷한 수준이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더니, 지난달 말 기준으로는 TSMC가 삼성전자에 비해 약 1500억 달러 앞섰다. TSMC는 일본과 미국 등에 신공장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내년 하반기부터는 3나노 공정 양산에 돌입할 전망이다. 

삼성으로서는 TSMC와의 경쟁도 힘겨운 상황에서 달갑지 않은 경쟁자인 인텔도 견제해야 하는 입장에 놓였다. 글로벌 ‘반도체 공룡’ 인텔은 세계 4위권 점유율을 가진 미국의 파운드리 위탁생산업체 글로벌파운드리를 인수합병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나섰다. 

이 계획이 성사될 경우, 미국의 자국우선주의 기조에 힘입어 바이든 행정부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TSMC와 인텔 사이에 삼성전자가 끼는 ‘샌드위치’ 구도가 현실화될 것이란 위기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삼성이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과거처럼 '한 박자 빠른 과감한 결단'이 절실하다. 이 부회장의 조속한 경영 복귀가 필요한 까닭이다. 작게는 삼성을 위해, 크게는 한국 산업 생태계의 경쟁력 회복을 위해, 이 부회장이 구상한 반도체 ‘초격차’ 전략을 직접 마무리 짓도록 길을 터 줘야 한다.

이제 공은 청와대로 넘어갔다. 반기업 성향 시민단체와 일부 언론, 노조의 눈치를 보다가 때를 놓친다면, 실기(失期)가 초래할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기업과 국민이 떠안아야 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관련기사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