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도쿄올림픽 앞, 재조명 받는 '韓商기업' 롯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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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도쿄올림픽 앞, 재조명 받는 '韓商기업' 롯데
  • 유경표 기자
  • 승인 2021.07.20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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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개막 앞두고 '재일한국 기업인' 재조명
故 신격호, 日 정재계 집요한 권유에도 귀화 거부
창업자 '사업보국' 정신, 신동빈 회장으로 이어져
한일 산업계 잇는 가교 역할 자임... 코리아 브랜드, 日진출 지원
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사진=시장경제DB
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사진=시장경제DB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 여파로 직격탄을 맞아 1년 연기됐던 도쿄 올림픽이 우여곡절 끝에 이달 23일부터 막을 올린다. 역대 최악의 한일관계가 이어지고 있는 요즘이지만, 선수들의 굵은 땀방울이 만든 결정체인 ‘스포츠 정신’은 국경마저 뛰어넘는 힘을 지니고 있다. 이는 한 편의 각본 없는 드라마처럼 양국 국민들의 마음에 감동의 물결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도쿄 올림픽으로 주목받는 대상은 선수들 뿐만은 아니다. 가깝고도 먼 나라로 인식돼 온 일본에서 사업을 일궈 뿌리내린 '재일한국인' 기업인들도 재조명 받고 있다.  

재일한국인 기업인들은 앞선 일본의 기술력과 자본을 고국으로 들여와 대한민국 경제 발전의 초석을 놓은 선구자들이었다. 일본의 차별과 견제는 고국을 생각하는 이들의 발걸음에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현재까지의 영향력이나 경제 기여도가 가장 큰 기업을 꼽는다면 롯데그룹을 빼놓을 수 없다. 

가난한 농가 10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난 고(故) 신격호 명예회장은 1942년 일본으로 건너간 '1세대 재일한국 기업인'이다. 그는 혁신적인 상품과 마케팅으로 큰 성공을 거두고 고국 투자를 염원하던 차에 한일 국교정상화를 계기 삼아 본격적인 행동에 나선다.

애초에 신 명예회장은 기간산업에 투자해 경제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뜻을 품고 제철사업을 추진했으나 국영화 방침이 정해지면서 희망을 접어야 했다. 대신 신 회장은 1979년 호남석유화학을 인수하면서 '기간산업 발전을 통한 사업보국'이란 처음의 뜻을 실행에 옮겼다.

롯데는 케이피케미칼과 말레이시아 타이탄케미칼, 삼성 화학3사(삼성정밀화학, 삼성BP화학, 삼성SDI 케미칼사업부문) 등을 인수하며 중화학부문을 집중 육성했다. 화학산업이 본궤도에 오르면서 롯데는 사업을 다각화했다. 백화점, 대형마트,면세점 등 유통사업부문과 롯데의 사업 근간인 된 식품사업, 글로벌 리딩컴퍼니로 거듭난 호텔사업부문을 추가하면서 재계 5위 기업으로 성장했다.

현재 롯데그룹은 신 명예회장으로부터 재일한국 기업인의 도전정신을 물려 받은 차남 신동빈 회장이 이끌고 있다. 신 회장은 아버지의 가르침에 더해 미국, 영국 등에서 쌓은 글로벌 비즈니스 경험을 토대로 사업구조 재편에 적극 나서고 있다. 신 명예회장이 경영능력에서 검증된 차남을 선택한 결과가 오늘의 롯데를 만들었다는 평가가 재계에서 나오고 있는 이유다. 

1990년 호남석유화학(현 롯데케미칼)에 입사한 신동빈 회장은 2004년 그룹 콘트롤타워인 정책본부 본부장에 선임됐다. 신 회장은 40건 이상의 국내외 인수합병, IPO 확대, 글로벌 진출 등 사업 확장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신 회장의 경영능력은 수치상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롯데그룹 연평균 성장률은 8.9%(자산 기준)에 이른다. 공정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롯데그룹 자산은 118조원으로, 2000년 대비 605.5% 증가했다. 5대 그룹 가운데 상장률이 가장 높다.
 

한·일 산업계 잇는 '플랫폼' 역할 수행
한국 리조트·면세점 브랜드, 日 진출 주도
   

대표적 '한상(韓商) 기업'으로 한국과 일본에서 경제적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롯데그룹이지만, 한일관계가 악화될 때마다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하는 입장에 처하기도 한다. 롯데 일부 계열사들은 국적논란에 시달리며 매출에 타격을 받기도 했다. 롯데가 일부 일본 브랜드를 한국에 들여온 것이 비난의 단초가 됐다. 롯데가 리조트와 면세점 등 한국 브랜드를 일본으로 진출시킨 공로는 반일(反日) 프레임에 묻히고 말았다. 

롯데는 양국 경제 교류의 가교 역할을 하는 거의 유일무이한 기업이다. 롯데가 일본과의 다방면 교류에 있어 중요한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롯데가 만들어낸 '한일 교류 플랫폼'은 국내 소·부·장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인프라이다.  

한국에서 번 돈을 일본으로 가져간다는 비난은 팩트와 거리가 멀다. 롯데가 일본에서 가져온 사업자금은 현재 가치로 수십조 원에 달하지만 2003년까지 원금, 이자, 배당금 등을 포함해 일본으로 돌아간 돈은 '0'원이다.  

신격호 명예회장은 지난해 1월 19일 향년 99세로 별세하기까지 일본으로의 귀화를 거부했다. 일본 내 사업에 불이익으로 돌아올 수도 있었지만, 일본 정재계 인사들의 수많은 귀화 권유를 물리치고 끝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켰다. 

최근 롯데는 전세계적으로 불어 닥친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혹독한 경영환경에 직면했다. 국내 대표 한상(韓商)기업으로서, 한국과 일본 산업계를 잇는 가교로서, 롯데가 위기를 극복하고 우리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응원과 지지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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