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땐 '인권침해', 이재용 땐 '알권리'?... 검찰發 기사의 두 얼굴
상태바
조국 땐 '인권침해', 이재용 땐 '알권리'?... 검찰發 기사의 두 얼굴
  • 양원석 기자
  • 승인 2020.06.24 05: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경25시] '출처 불명' 검찰발 단독 보도의 문제점
檢 흘려준(leak) 일방정보 쏟아내 기사불신 자초 
언론사 정치 성향에 따라 보도 행태도 극과 극
조국 '흘리기' 비판 방송, '받아쓰기'로 이재용 비판 앞장 
재판개시 전 피의사실 기사화... "알권리 앞세워 인권 무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이기륭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이기륭 기자.

이달 초 법조계의 모든 관심은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수사부(부장검사 이복현) 행보에 모아졌다. 2일 오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변호인단의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 요구를 시작으로 4일 오전 검찰 수사팀의 이 부회장 구속영장 청구, 8일 중앙지법 영장실질심사, 9일 오전 영장 기각 결정, 11일 중앙지검 시민부의위원회의 검찰수사심의위 소집 의결, 12일 윤석열 검찰총장의 대검 검찰수사심의위 소집 결정까지 약 2주간 서초동 검찰청사 주변은 어느 때보다 바쁘게 돌아갔다.

이 부회장에 대한 검찰의 영장 청구를 전후해 벌어진 서초동 주변 상황은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무엇보다 약 2주 사이 드러난 ‘검(檢)-언(言) 유착’ 정황은 검찰의 내부 개혁의지를 의심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검찰이 영장 청구에 앞서 이 부회장을 소환 조사한 지난달 말부터 일부 특정 매체는 수사팀의 시각을 그대로 옮긴 검찰發 기사를 쏟아냈다. 이들 기사는 ‘검찰 관계자’를 인용하지 않았을 뿐, 내부자가 아니라면 알 수 없는 정보를 기반으로 작성됐다. 중요한 것은 이들 기사의 신뢰도와 작성 배경이다.

◆사전 취재 없거나 매우 부실... 내부자 리크, 그대로 받아쓰고 ‘단독’ 붙여

과거 검찰발 기사는 담당 기자가 사전 취재를 통해 사건의 내막을 상당 부분 파악한 뒤, 검찰 취재원에게 그 내용을 ‘확인’하는 식으로 이뤄졌다. 이 경우 검찰 취재원도 ‘진위 확인’을 구하는 기자의 물음을 외면하지 않았다. 즉 과거 검찰발 특종 내지 단독기사는 기자가 해당 사안에 대한 철저한 사전 취재를 통해 실체를 규명한 뒤, 검찰 취재원에게 확인을 요청하는 교차검증 형식을 띄었다. 이렇게 생산된 기사의 신뢰도가 높았음은 물론이다.

이 부회장 내지 삼성 수사 관련 검찰발 단독 기사는 그 형태는 물론 내용에 있어 과거의 그것과는 결이 다르다. 무엇보다 기자 개인의 사전 취재가 없거나 부실하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최근 들어 인화력이 강한 검찰 수사 관련 단독기사는 대부분 내부 관계자가 '흘려주기(leak, 리크) 정보'에 의존한다. 사전 취재 없이 내부 정보원이 흘려준 리크에 전적으로 기대 앵무새처럼 그 내용을 받아적는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심한 경우, 객관성을 상실한 기자가 ‘받아쓰기’에 ‘일어났을 법한 상상’을 덧붙이는 경우도 있다. 이런 방식으로 생산된 기사에서 ‘사실 확인’을 기대하는 건 사치이다. 팩트파인딩은 고사하고 팩트체크도 안 된 ‘검찰발 받아쓰기’ 기사가 ‘단독’이란 완장을 차고 송고되는 현상은 최근 들어 더욱 잦아졌다.

이런 현상이 가장 극심하게 드러난 사례로는 두 건을 꼽을 수 있다. 하나는 이 부회장 및 삼성 수사이고 다른 하나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수사이다. 두 사건을 다룬 매체들의 검찰발 단독 기사 중 상당수는 리크를 받아쓰거나, 여기에 기자 개인의 상상력을 가미해 만들어졌다. 다분히 편향된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이를 뒷받침하는 팩트는 부실하기 짝이 없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기자의 사전 취재는 없거나 매우 미흡하다는 공통점도 발견된다. 흥미로운 점은 두 사안을 대하는 매체의 태도가 이중적이란 사실이다.

◆조국 前 장관 수사 리크 비판하던 방송사, 이재용 부회장 수사 리크는 앞장서 보도

한 지상파 방송은 조국 전 장관 일가 수사 관련 다른 매체의 리크 기사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언론이 드러나지도 않은 혐의를 사실로 단정 짓고 조 전 장관 가족의 인권을 침해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피의사실공표의 위법성’과 '피의자 인권'을 부르짖던 이 방송은 삼성 수사와 관련해선 태도를 180도 바꿨다.

이 방송은 이 부회장 및 삼성에 대한 검찰의 수사를 적극 지지하는 우호적 기사를 여러 차례 내보내면서 여론을 주도했다. 특히 이 방송은 이 부회장에 대한 검찰의 영장 청구가 기각된 뒤에도 검찰을 두둔하는 내용의 보도 행태를 유지했다. 이 방송사가 12일 보도한 [단독] 이재용이 진두지휘?…"골드만삭스에도 물어봤다"는 제목의 뉴스가 대표적이다. 저녁 시간대 전파를 탄 위 기사의 도입부는 이렇다. 

삼성물산 지분 7%를 가진 미국계펀드 엘리엇 등의 반대로 제일모직과의 합병이 무산될 위기였던 2015년 6월 4일.

상황의 심각성을 보고받은 이재용 부회장은 회의를 소집하고, 외국계 대형 증권사 골드만삭스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자문을 구했습니다.

나흘 뒤엔 이 부회장의 요청으로 골드만삭스 미국 본사 전문가가 아예 한국에 들어옵니다.

이 부회장의 주재로 열린 회의에는 미래전략실 임원들도 참여했고, 합병 성사를 위한 긴급 대응 전략이 이 자리에서 마련됐다고 검찰은 보고 있습니다. 회의에서 나온 대책은 모두 7가지.
(중략) 
또 제일모직에 대한 인위적인 주가 부양, 합병에 긍정적인 보고서를 유도하자는 계획 등이 담겼습니다. 계획은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중략) 
자사의 가치를 억지로 떨어뜨려 합병에 나서야 했던 삼성물산은, 이른바 합병 시나리오의 설계 '용역비' 240여억 원까지 떠맡아야 했던 걸로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습니다.

기자는 옆에서 현장을 지켜본 것처럼 내용을 전하고 있다.

‘상황의 심각성을 보고받은 이재용 부회장은 회의를 소집하고...’ 등의 표현은 사실이라면, 검찰의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이다.

‘자사의 가치를 억지로 떨어트려 합병에 나서야 했던 삼성물산은...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습니다’와 같은 문장은, 이 부회장과 삼성 전현직 임직원들의 범죄 혐의를 '사실'로 단정지었다.

기사를 보면 법원이 이 부회장을 구속하지 않은 것이 이상할 정도이다. 위와 같은 사실이 존재했다면 법원이 영장을 기각하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법원의 영장기각 후 검찰이 별다른 반응을 내놓지 않은 것도 납득할 수 없다. 중앙지검 시민위원들이 이 부회장 및 삼성 수사의 타당성을 심의해 달라며 부의(附議)를 의결하는 일도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사정은 위 기사 내용이 사실과 거리가 멀다는 점을 반증한다.

위 기사의 출처를 검찰발 리크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영장 청구 전후 사정을 종합할 때 그럴 가능성은 충분해 보인다.

◆‘출처 불명’ 검찰발 기사, 영장 기각 후에도 양산... “수사심의위 겨냥 여론몰이용” 분석

위 방송사와 비슷한 논조의 중앙일간지 A매체도 15일 거의 동일한 내용의 기사를 게재했다([단독]이재용, 수년간 골드만삭스에 ‘승계 조언’ 직접 받아).

영장 기각 후에도 ‘출처 불명’ 검찰발 기사가 나오는 이유에 대해서는 수사팀에 우호적인 여론 조성을 목적으로 한, '사전 정지작업'의 성격이 강하다는 분석이 있다.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는 26일 회의를 열고, 이 부회장 수사·기소의 타당성과 적정성 등을 살필 예정이다. 검찰 수사팀은 수사심의위 개최를 앞두고 시민전문가 설득을 위한 의견서 작성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체 ‘정치적 성향’ 따라 리크 기사 남발... 무차별적 여론재판 부추겨

‘출처 불명’의 검찰발 단독 기사가 위험한 이유는, 입증되지 않은 수사기관의 ‘심증’이 보도의 형식을 빌리면서 ‘사실’로 둔갑하는 데 있다. 더 심각한 해악(害惡)은 특정인에 대한 무차별적 여론재판을 부추긴다는 점이다. 보도 내용을 고려할 때, 시청자는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이 경영권 승계를 위해 시세를 조작했다’는 편견 혹은 맹신을 가졌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여론이 찍은 낙인은 재판을 통해 무죄선고를 받아도 지워지지 않는다. 마녀사냥식 여론몰이는 특정인에 대한 인격 살인이나 다름이 없다.

석동현 변호사(전 서울동부지검장)는 검찰의 정보 흘리기와 여기에 터잡은 출처 불명의 리크 기사가 갖는 폐해를 이렇게 설명했다.

“정치적 성향이나 사안에 따라, 매체들의 태도가 달라진다는 데 문제의 근원이 있습니다. 조국 전 장관 수사 리크 기사를 비판하던 언론이 삼성 수사 리크 기사는 문제의식 없이 보도하는 것이 좋은 예입니다. 이런 식의 보도는 언론은 물론 검찰의 수사 신뢰도를 훼손할 수 있기 때문에 스스로 자제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합니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장은 이들 기사가 안고 있는 ‘피의사실공표’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수사기관의 피의사실공표는 헌법 제27조 제4항이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고 규정한 것에 반합니다. 국민 알권리의 중요성은 부인할 수 없지만 피의사실이 공표되는 순간 피의자의 인권도 무시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삼성 사건의 경우는 (사건관계인이) 검찰수사심의위원회 판단을 요구해 둔 상황이라는 점까지 고려해야 합니다. 언론이 기사의 형식을 빌려 재판에 넘겨지지 않은 사건의 피의사실을 공표하는 것은, 국민의 알권리 보장이라는 공익적 목적에 부합한다고 보기에 거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관련기사

주요기사
이슈포토